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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게 된 취지가 무엇인가?
    한국성평화연대를 만들었을 때가 2018년입니다. 한국성평화연대를 만든 이유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안티테제’에서 가지는 것은 한계가 따른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반대 세력이 아닌, 우리가 주도하는 긍정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둘째,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평등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화합을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해야 했었습니다. 평등이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띄다보니 성평등의 사용이 한계점을 넘어 오히려 개개인에게 폭력적으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성화합’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셋째, 언어의 부재입니다. 성별에 관련한 모든 담론을 구성하는 언어가 이미 오염되고 왜곡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성평등, 성차별, 성인지감수성, 2차가해, 여성폭력, 데이트폭력 등을 비롯한 수많은 언어들은 남성과 여성의 화합을 설명하기에 너무 오염되어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화합을 말할 수 있는 개념어와 활자들로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성평화연대에서는 성평등과 성차별로 남녀를 바라보지 않고, 성평화와 성위기 혹은 성화합과 성파괴로 상황을 바라보며 설명합니다. 또한 가정 모델을 가부장제라고 설명하지 않고, ‘가분담제’라는 개념어로 설명합니다. 성담론의 대전제를 구성하는 개념어의 전환으로 갈등의 언어가 아닌 화합의 언어로 설명합니다.


    성평화 대상을 수여받고 있는 최인호 군


    어떻게 만들어 왔나?

    한국성평화연대라는 집단 조직을 만들며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SNS를 통해 성평화라는 가치관을 알리고, 실제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어설프지만, 그때는 정말 더 어설펐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로 만나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진심이 충만했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들임에 감사했습니다. 피켓, 포스터, 카드뉴스를 만들어 활동했었는데 당시는 구호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거나, 디자인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하나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의견이 분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성가치관을 정립하는데에 있어서, 어떤 것을 메인 의제로 둘지 등 각종 의견에 대한 각자 의견이 갈렸기 때문에 단톡방 안에서도 갈등이 많아 중재하고 규칙을 만드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리 공동체의 큰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성평화기본체계”를 만들고, 성평화 로고와 구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부와 본부 체계를 만들고 각 지부별 지부장과 부지부장을 투표로 선출해 개인 역량이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는 진심으로 조력하고 응원해주는 동지들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부별 매달 정기 모임과 단체 총괄 행사인 정기 총회를 연도별로 기획하며 우리의 단합과 의지를 한국성평화연대 구성원 각자가 가시적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인원은 초기 20명이 40~50명이 되고, 50명이 100명으로, 100명이 15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성평화 대모상을 수여받으신 오세라비 작가님


    무엇을 해왔나?

    이후 한국성평화연대는 교육정책국을 따로 개설해서 성평화 가치관을 구성하는 개념어들로, 오염되고 왜곡된 주요 성담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커리큘럼화하여 교육하고 배포하고 있습니다. 가령 가부장제, 유리천장, 독박육아, 성인지감수성,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비동의간음죄, 젠더와 성주류화 등에 대해서 성평화적 견해들을 만들어 공표합니다. 공표된 견해들은 각 지부로 전달되어 지부의 정기모임에서 다뤄볼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학생사회에도 성평화라는 가치관을 알리기 위해 전국 연합 성평화 동아리, WALIH(왈리)We Always Live In Harmony를 조직하였습니다.

    초기 WALIH는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세종대, 인헌고, 송내고 등을 비롯하여 총 11개 학교로 시작하였습니다. 각 학교의 동아리 회장들이 동아리 부원을 모집하여 성평화 커리큘럼을 따라 관련 서적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동아리였습니다. 당시 인헌고의 WALIH 동아리 회장을 맡은 학생이 최인호군이었습니다. 이후 최인호군과 함께 교내 페미니즘 사상 주입과 전교조 정치 교사들의 편향된 사상 주입을 막고 스스로 학생을 수호하자는 목표로 ‘전국학생수호연합’이라는 학생 조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국성평화연대는 학생 사회에서 성평화 가치관을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사법 시스템 속에서도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라는 왜곡된 성인식으로 잘못 자리잡은 허위 미투와 수사 관행으로 너무나 쉽게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를 도와 성평화 가치관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센터를 통해 데이터들을 취합해 남성가해자론, 여성피해자론의 허구 담론의 모순을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훗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숭고함과 남성과 여성의 성화합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현재 성별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위대한 역사가 소멸되고 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공격적이며 당장이라도 벗어던져야 할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평화는 남성과 여성이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가장 고결하고 숭고한 사명을 띄고 있는 터전이자 설명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자랑스러운 남성과 여성, 자긍심 느낄 수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사회의 공통의 목표일 것입니다.


    한국성평화연대 지부원들


    이것을 위해 제도적으로는 ‘성별을 평등하게 맞추다보면 정의로운 세상이 구현될 것’이라는 양성평등기본법을 넘어, 성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성별을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양성’평화’기본법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현재 양성평등기본법은 남성과 여성을 다른 별개의 진영으로 두는 전제 위에 서로가 평등해져야 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하지만, 양성평화기본법은 남성과 여성이 같은 진영에 있다는 전제 위에서, 남성과 여성을 멀어지게 만들거나 자긍심을 폄훼하는 별개의 다른 진영으로부터 ‘남성과 여성을 수호’하는 제도가 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는 결국 인류의 성평화를 이뤄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문명 사회를 이룩한 선진국을 필두로 페미니즘과 PC주의 광풍때문에 성별을 탈피하는 것을 넘어 성별이 소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하고 가장 신뢰도가 높은 성별인 남성과 여성이 인류의 역사에서 지워져간다면, ‘정체성 난민’들이 넘쳐나게 되어 국가는 이들을 수용하여 관리하는 수용소가 될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영역이 넓어져야 개인이 확대됩니다. 남성과 여성이 축소되면 축소될 수록 공권력이 비대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아직은 미비하고 연약하며 부족한 소집단이지만, 대한민국에서부터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나아갈 것입니다.
    성평화! 좋아! 조아! 조화!



    한국성평화연대 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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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가정기본법은 2004년, 가정 중심의 통합적 복지서비스 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행정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9월 1일과 11일에 더불어 민주당 남인순, 정춘숙 의원이 각각 현행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습니다.

    두 의원 모두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이 ‘건강가정’에만 지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다양한 가족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현대사회의 변화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건강가정’이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도출시킬 수 있어 가족형태간의 차별을 야기하는 바, 법률명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수정함으로써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가족 구성원간의 평등을 도모하고자 개정안을 발의하였다고 제안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 “가족” 개념 삭제(제3조 제1호 삭제)
    ▶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가족지원”, “가족정책” 등 중립적인 용어로 변경
    ▶ 혼인과 출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족해체를 예방하고자 하는 제8조와 제9조 삭제
    ▶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강조하는 제2조의 신설 등이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정’의 정의를 삭제하고 ‘가족’으로 대체하면서, 정작 ‘가족’의 정의(Definition)가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성가족위원회와 법무부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서의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개정안에서 ‘가정’의 용어를 삭제하고 ‘가족’으로 대체하면서 ‘가족’에 대한 정의 규정을 삭제해 버림으로써 넓은 의미로 동성커플, 동성결혼자 등이 가족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소위 ‘평등법(차별금지법) 조항과 결합하면 결국 동성결혼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성문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국민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혼인과 출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족해체를 예방하고자 하는 조항을 삭제하려는 시도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한 헌법 제 36조 1항을 위반한 위헌적인 법률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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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밤, 20세 가량 되는 앳된 목소리의 한 자매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렵사리 꺼낸 말은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요?”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주제이기에 “왜 그러한 질문을 하세요?” 하고 되물었을 때, 자매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도무지 하나님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차갑고 무서운 분으로 느껴질 뿐, 나를 기뻐하시며 나를 따스하게 사랑하시는 분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하나님이 나를 진정 사랑하신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을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하는 절규와도 같은 호소였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부모님은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시는 장로님, 권사님이시지만, 그 부모로부터 따스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무관심하고 야단치는 부모이었기에, 그 딸은 육신의 부모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도 냉정하고 무관심하고 야단치는 분이라는 ‘왜곡된 하나님 상’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도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의 인격이고 성품입니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즉 네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사랑스럽지 못해서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나의 인격이고 성품이기 때문에 네가 사랑스럽든 사랑스럽지 않든 간에 사랑은 흘러나와서 너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흠뻑 자기 부모로부터 건강한 사랑을 체험하고 배우며 살았다면 저절로 그러한 사랑이 흘러나와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건강하지 못한 사랑을 경험했거나 자기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결과 자기 자녀들에게 또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하거나 잘못된 사랑을 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 연약함, 실수 등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하신 참 사랑인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흠뻑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에게 사랑을 흠뻑 넣어 주어야 합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자녀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 또한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늘 사랑에 목마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에 목마름을 느끼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신뢰를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도록 흠뻑 사랑을 전달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랑에는 건강한 사랑과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애착 또는 집착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강요하고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랑은 자녀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혼돈을 경험하게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랑은 자녀의 정신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부모 여러분, 당신의 자녀 사랑은 어떤지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이러한 사랑은 잘못된 사랑입니다


    1) 과잉보호 사랑

    과잉보호는 자녀를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과잉보호는 자녀를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만듭니다. 과잉보호를 받은 자녀는 내가 무능하기 때문에 부모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자녀는 때로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해야 하는데, 과잉보호는 실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모험과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평생 따라 다니며 어려움을 막아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자녀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가게 하기보다는 고난에 직면하고 이길 줄 아는 강한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밥을 먹여 주기보다는 스스로 먹도록 기회를 준다든가, 옷을 입혀 주기보다는 스스로 갈아입도록 기다려 주고, 무거운 것을 들어주기보다는 스스로 들어보게 하거나, 숙제를 지나치게 도와주기보다는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성장시키는 사랑입니다. 자녀를 부모만 의존하는 나약한 존재로 키우지 마십시오. 인생의 과제를 스스로 풀어 나가는 강한 자녀로 키우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2) 권위 없는 사랑

    권위 없는 부모는 자녀를 망칩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 권위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권위란 자녀를 윽박지르거나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요즈음 자녀에게 절절 매거나 자녀에게 ‘안 돼’ 라는 말을 못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녀에게서 부모로서의 권위와 존경을 받아내지 못하면 자녀는 나중에 감당 못할 말썽쟁이가 됩니다. 성경적 부모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와 진리를 대신하여 자녀를 인도해야 합니다. 또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억지로 강요하는 순종이 아니라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권위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또한 순종은 자녀를 복 받게 하는 영적 법칙이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 :1-3)’


    이처럼 자녀가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할 때 번영과 장수의 약속된 축복이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편애

    자녀를 편애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녀뿐 아니라 편애 받는 자녀에게도 해롭습니다. 편애 받는 자녀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만한 사람이 되기 쉽고, 반면에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거절감과 열등감과 분노의 상처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 자녀를 더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낳지 않은 자녀를 키우는 경우에도 본능적인 사랑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 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마음은 그렇더라도 공평한 사랑이 전달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이를 위해서 때로는 사랑하는 마음이 덜 가는 자녀에게 오히려 의도적으로 더욱 친근하게 사랑을 표현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따스한 사랑의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이지요. 편애는 극복될 수 있습니다. 편애가 모든 자녀에게 해롭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자녀 모두에게 골고루 공평한 사랑을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4) 완벽주의 사랑

    완벽주의 부모는 자녀에게 “그것은 이러해야 합니다” “더욱 잘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좋겠습니다” 하는 끊임없는 요구를 합니다. 이미 달성한 성과에 대해서는 격려와 인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혹시 표현하더라도 아주 슬쩍 표현하고 맙니다. 크게 강조해서 전달하는 것은 “더욱 잘하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완벽주의 부모는 아무리 잘 해도 칭찬과 만족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과잉 기대를 가지고 더욱 잘해서 최고의 성과를 받으라고 계속해서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 완벽주의입니다.


    그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부모의 만족과 인정, 칭찬과 격려에 굶주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도 최선을 다해 부모의 기대에 다다르려고 노력하지만, 점점 힘에 겨워합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안 돼’ ‘나는 항상 이 모양이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불가능해’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자포자기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기대와 요구보다는 자녀의 작은 성취에도 아끼지 말고 칭찬과 격려를 표현하는 부모가 되십시오.


    5) 조건부 사랑

    조건부 사랑(conditional love)이란 “만일 네가 이러이러하면 엄마가 너를 사랑할 거야”라는 표현처럼, 사랑을 베풀기 전에 자녀에게 어떤 조건이나 대가를 요구하는 부모의 태도를 말합니다. 자녀가 사랑스러운 일을 해야만 사랑하겠다는 행위 위주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자녀의 자격과 조건과 행위와 성적 등에 따라 사랑을 줄 수도 있고, 사랑을 걷어갈 수도 있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건부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말 잘 들어야 엄마가 예쁘다 그럴 거야” “착해야 아빠 딸(아들)이지” “말 안 들으면 엄마가 밉다고 할 거야” 같은 표현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나 성취와 상관없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자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전달해야 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자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 가운데 두려움 없이 밝게 성장하게 됩니다.


     

    참사랑을 전달하는 몇 가지 구체적 방법

    그러면 이제 조건 없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몇 가지 태도와 방법을 살펴봅시다.


    1) 자녀를 보면 활짝 웃어주세요

    누군가 나를 보고 웃어준다는 것은 내 존재가 환영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특히 부모가 나를 볼 때마다 활짝 웃으며 기뻐해 준다면, 자녀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합니다. 내 존재 그대로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린다면 자녀는 존재의 무가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의 불만스러운 표정 속에서 자녀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뭔가 내가 또 잘못했구나’ ‘나를 싫어하나 보다’ ‘나는 자격 미달이다’ 하는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받게 됩니다. 은근히 ‘너는 못 마땅해’, ‘이래야만 너를 사랑할 거야’ 라는 조건부 메시지를 주면서 사랑이라는 대가로 아이를 조정하는 셈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은근히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어린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노력해도 부모의 사랑이 오지 않을 때 자녀는 부모로부터 거절감이라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것은 어린 자녀에게는 형벌과도 같습니다.


    자녀들을 보면 활짝 웃어 주세요. 자녀를 보고 기뻐하세요. 자녀를 만나면 환영해 주세요. 이것이 사랑과 용납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너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기쁨이다’라는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아이가 옷을 더럽혀 왔을 때도, 성적이 떨어졌을 때도, 엄마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자녀를 보면 무조건적 웃음을 선물로 제공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녀는 놀랍게도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2) “참 귀하구나”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주세요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치 종이 울려야 종의 역할을 감당하듯이 사랑은 표현되어야 그 효과가 발휘됩니다. 마음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자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십시오. 예를 들면 “너는 참 귀하구나” “어이구 귀해라” “정말 사랑스럽다” “엄마는 너만 보면 좋다” “아빠가 피곤했는데 우리 아들(딸)을 보니 피곤이 싹 가시는구나” “요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너랑 바꾸나 봐라” 하는 표현 속에는 부모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를 사랑한다는 귀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반대로 “저게 왜 태어났는지 몰라” “아이 지겨워” “못 살어 못 살어” “아휴 저 웬수!” “누굴 닮아 저렇게 못생겼니?” “사랑할 구석이 있어야 사랑하지?” “저리 가라, 꼴도 보기 싫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정말 실망스럽다”하는 표현 속에는 거절감이 포함된 조건부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부모의 무심코 던진 말들이 자녀에게는 존재의 무가치감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자녀를 볼 때마다 조건 없는 사랑과 축복의 표현을 전달하십시오.


    3) 자녀가 실수했을 때 “괜찮다”라고 꼭 말해 주세요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실수를 용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자녀가 컵을 깨뜨렸을 때, “너 또 실수했구나” “왜 그렇게 부주의하니” “엄마가 조심하라고 그랬지”하고 무심코 던지는 말들에서 자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수는 배움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오히려 실수를 감행할 때 발전과 성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실수했을 때에도 사랑과 용납을 표현하면 자녀는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risk taking) 사람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자녀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괜찮다” “다치지 않았니?”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단다” “실수를 겁내지 마라” “엄마도 실수한단다” “아빠도 예전에 성적이 떨어진 적이 있었단다” 하고 말하십시오. 자녀는 처음에는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의 내용 속에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고는 자녀는 앞으로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까지도 용납하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4) “사랑해” 쪽지를 자주 전달하세요

    사랑의 표현은 날마다 필요합니다. 어제뿐 아니라, 오늘도 부모의 사랑은 자녀에게 표현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도 비록 어릴지라도 생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때마다 용기를 잃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특히 십대의 자녀는 친구와의 관계와 성적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때 부모의 “사랑해” 쪽지는 큰 용기와 격려를 갖게 해 줍니다. 
     

    e-메일과 문자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포스트잇에 적어서 자녀의 책상 위에 붙여 놓으세요. “많이 힘들지?”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 “아빠가 항상 네 곁에 있음을 기억해라”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한단다”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다”라는 쪽지를 전달하십시오. 그것이 조건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5) 만날 때마다 품에 잠시 안아 주세요

    자녀를 볼 때마다 부모의 품에 안아 주십시오. 부모의 넓은 품을 아끼지 마십시오. 부모의 따스한 포옹을 통해 자녀는 많은 위로와 사랑을 체온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엄마의 따스한 품, 아빠의 넓은 가슴 속에 안길 때 자녀는 조건 없는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포옹의 마력이기도 합니다.  


    물론 포옹하면서 “사랑해”라는 표현을 함께하면 효과는 더욱 큽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자녀에게 다가가 “힘들지?” 하고 말하면서 어깨를 감싸준다면, “열심히 공부해라” 하고 말하는 것보다 몇 배나 강력한 지지와 격려를 줍니다. 자녀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포옹해 주는 습관을 가지세요. 그 효과는 실로 놀랍습니다. 


    6) 자녀와의 데이트 시간을 가지십시오

    자녀와의 데이트는 관계 회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자녀를 진정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무리 바빠도 자녀와의 데이트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흔히 자녀는 ‘우리 엄마, 아빠는 나와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시간을 내어서 자녀와 대화하며 데이트할 시간은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빠는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다”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아빠는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 시간 좀 낼 수 있니? 아빠가 밖에서 만나고 싶은데….” “어디서 만날까?” “학원 앞에서 아빠가 기다릴게 나하고 데이트 좀 하자” 하고 자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보십시오. 자녀가 좋아하는 장소를 택하십시오. 시끄러운 곳이어도 좋습니다. 그냥 만나서 웃으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그때 “공부 잘하고 있니?” 라는 말은 금물입니다. 오히려 자녀의 친구 이야기나, 고민거리를 들어만 주십시오. 


    설교와 교훈보다는 자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데이트입니다. 부모에게 쓸데없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자녀에게는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빠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자녀는 아빠의 사랑과 용납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녀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 하십시오

    어린 자녀는 부모가 야단칠 때, 여러 가지 상처를 받기가 쉽습니다. 훈계를 받으며 자녀는 마음속으로 잘못된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는 나를 싫어하시는 구나’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까’ ‘나는 형편없는 아이야’ ‘나같이 나쁜 애는 언젠가 나쁜 벌을 받고 말거야’ 등의 왜곡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지나친 죄의식이나 낮은 자존감의 상처가 생기기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훈계는 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은 벌이나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확신만 있으면 고난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따라서 자녀를 훈계할 때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벌 받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오히려 부모의 사랑으로 느껴지도록 유의하십시오.


    자녀는 결국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운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결국 진정한 훈계는 삶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델링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말과 혀만으로는 자녀에게 좋은 성품과 습관을 심어주기는 어렵습니다. 자녀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으면 부모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으면 우리부터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지런하라”고 했으면 우리부터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했으면 우리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는 진실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삶을 보면서 자연스레 모든 것을 배운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기복 교수
    한동대학교 교수와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성경적 부모교실, 성경적 아내교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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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 사회에는 결혼의 때를 한 없이 늦추고 미루는 젊은이들이 많다. 결혼 적령기가 따로 없다고 여기면서 싱글로서의 편안함과 경력 그리고 자아실현을 좇아 사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나 짧고 때와 기한이 있다. 봄이 있으면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으면 겨울도 있다. 씨를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청년의 때가 있으면 황혼의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결혼도 중요한 삶의 과제이기에 결혼을 계획해야 한다. 결혼도 비전이다.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결혼도 함께 계획하라. 대략 이 나이 즈음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시작하고 자손을 낳아 양육하겠다는 인생 플랜을 세워보라. 세상의 유행을 따라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그렇게 살지 말기 바란다.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살기를 꼭 부탁하고 싶다.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가장 행복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어야 마음껏 자유롭게 생활할 있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순종하며 최고의 삶을 있다. 결혼제도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복된 선물이다. 결혼은 오랜 인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연히 생긴 진화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결혼제도는 창조주의 신성한 아이디어이다. 결혼제도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 담겨있다. 요즘 가정이 많이 깨어지면서 결혼에 대한 행복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지만, 결혼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원래 결혼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제도이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을 분명히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 그들이 연합하여 몸을 이루라고 하시며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자녀들이 진리 가운데 바르고 행복하게 살면 부모의 마음이 없이 기쁘듯이, 인간이 행복한 결혼과 가정을 이루어갈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 역시 없이 기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그런데 행복은 그냥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행복은 배우며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값진 선물이다.

    그런데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결혼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에 대해서도 주저함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부모님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기에 결혼에 대해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부모님이 설사 불행하셨어도, 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있다. 혹은 과거의 만남의 실패로 인한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도 버리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신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아버지, 행복한 결혼과 가정을 시작할 있도록 도와주실 믿습니다.라고 기도를 시작하라. 결혼을 향해 마음을 열어 보라. 결혼을 위해 폭넓은 만남을 시작하라. 지나치게 높은 이상형을 찾으려도 헤매지 말라.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자신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부족한 사람이 만나서 함께 의지하며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 결혼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최고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그러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도 애써 만들어 가는 것이다. 때로는 힘겹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행복과 축복이 대가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을 공부해야 한다. 사랑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다. 성적인 욕구가 사랑이 아니다. 흔히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하지만, 사랑이 그냥 서로 끌리는 감정만이라면 결혼은 위태롭다. 감정은 쉽게 변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위해 준비해야 사랑은 책임감 있는 사랑이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혼수와 예단, 신혼여행과 야외촬영 등은 힘들게 준비하면서도 막상 결혼 살아가야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는 것을 본다. 실제의 결혼은 결혼식이 아니라 매일매일 살아가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 삶이 결혼이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결혼생활 가운데 해야 역할들이 있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결혼 후에 겪게 예상문제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결혼과 사랑에 대해 배우며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행복한 결혼을 얼마든지 만들어 있다. 그렇다면 결혼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결혼은 등산길과 같다

    부부는 인생이라는 높은 산을 등반하는 동행자와도 같다. 사람이 넘어지고 주저앉았을 나머지 사람이 손을 잡아 일으킬 있다. 내가 지쳐 쓰러지면 당신이 곁에서 나를 일으켜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붙잡아주고 감싸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당신이 있기에 가파르고 험한 길도 거뜬히 오를 있다. 부부가 팀이 되어 비바람 속에서도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인생길, 그것이 결혼의 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등산을 위한 베이스캠프와도 같다. 등반을 위해 준비하고 휴식하며 재충전하는 곳이 베이스캠프이다. 가정에서 충분한 안식을 취하고 다시 힘을 얻어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갈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정은 충분히 안식하며 쉬는 곳이어야 한다. 또한 가정은 폭풍 속에서도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바깥세상이 흉흉해도 가정은 진리로 무장된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당신의 가정은 어떠한가? 당신은 어떤 배우자인가? 배우자나 예비 배우자에게 넉넉하고 편안한 피난처를 제공할 있는가? 흔들리지 않는 진리 위에 결혼과 가정을 지켜가고 있는가?


    결혼은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돈을 많이 벌어서 편안한 삶을 살겠다는 목적보다는 높고 고상한 목표와 비전이 있어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가 하나가 되려면 남편과 아내가 같은 비전과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가치관도 많이 다르고, 삶의 우선순위와 목적도 다르고, 비전도 상이하다면 결혼생활에서 갈등과 어려움을 겪게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있으면 인생의 비전이 유사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사람이 가치관과 목표가 완전히 일치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결혼 전이라면 서로 인생의 꿈과 비전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함으로써 어느 정도 유사한지를 살펴보아야 것이다. 혹은 지금은 서로 달라도 함께 좋은 책들을 읽으며, 성경공부 모임에도 함께 참석하면서, 서로의 삶의 목적을 조율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3:3) 말씀처럼 현재는 비전이 달라도, 하나님께서 일치시켜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다. 하나님은 연합과 일치를 기뻐하신다. 부부가 같은 비전으로 일치할 있다면, 그들은 팀이 되어 인생의 목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전진할 있을 것이다.

    <소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브라질의 바나와 원주민을 섬기는 강명관·심순주 선교사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비전과 강한 사명감으로 만났기에 그들 부부의 연합과 친밀감은 어느 누구도 끼어들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전 친밀감으로 그들은 외롭고 힘든 오지에서도 인내하며 선교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고 있었다.

     

    결혼 이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또한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라. 먹고 사는 것이 비전이 수는 없다. 하나님이 주신 고상하고 높은 비전, 이타적 비전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비전이 분명할수록 사소한 일로 갈등하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반드시 예비 배우자와 함께 서로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눈 , 기도하는 데이트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직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 배필을 만나지 못했다면 먼저 자신의 대인관계를 점검해 보기 바란다. 혹시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의 폭이 쳇바퀴 돌듯이 제한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바란다. 혹은 내가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너무 소극적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평소에 건강한 교제권의 그룹에 속하는 것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기 원한다면, 일단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 한다. 일부러 믿음의 공동체에 적극 참여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DTS(예수 제자 훈련 학교) 가고, 수련회도 가고, 은혜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신우회를 만들어서 믿음안에서 만남의 기회를 늘려가는 것이 좋다. 특히 봉사활동이나 단기선교 등을 함께 가면,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있다. 그러한 힘든 활동을 통해 어떤 사람의 평소에 알지 못하던 면들을 있어 유익하다. 공동체 속에서 사람의 인격과 인간관계를 관찰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이 좋다 주장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있다. 평소에 친구들과도 우정을 쌓고, 이성 친구에게도 마음을 열고 교제하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갖기 바란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교제(fellowship) 자리에 적극 참여하기 바란다. 그러한 교제 속에서 자신의 인격과 인간관계를 가꾸어 가다 보면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다. 가만히 있으면서 누군가 동화처럼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는 것은 비현실적인 태도이다. 결혼과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만남의 기회에 적극 참여하기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인격과 성품을 가꾸고 변화시키며 발전시키는 진전이 필요하다. 나쁜 버릇은 빨리 버리고 좋은 습관과 성품을 개발한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날 기회는 더욱 것이다. 최고의 결혼준비는 나의 좋은 성품과 인격을 갖추는 일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라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결혼에 있어 경제 문제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하려는 태도는 결혼을 어렵게 만든다. 광고나 TV 드라마를 보면 멋진 집과 자동차를 가진 남자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자에게 멋지게 프러포즈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감히 결혼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해도 결혼할 있다. 갖추지 않아도 시작할 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결혼해서 함께 힘을 합쳐 하나씩 일구어 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나는 검소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여섯 개나 되는 아궁이에 밤에도 연탄을 갈아줘야 하고, 화장실에 가려면 멀리까지 가야 하는 그런 집에서 살았다. 집은 언제나 추웠고 더운 물도 연탄불에 데워야 했다. 그래도 그것이 고생스럽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플라스틱 하나를 구입해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하나씩 살림살이를 늘려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히려 고단하던 신혼 시절이 지금은 우리의 추억 거리가 되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단칸방에서 가진 없이 시작하는 신혼부부 많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을 만나려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이다. 지나치게 세상적인 조건이나 물질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고르지 말라. 물질의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만고 진리의 법칙이다. 믿음 안에서 모험심을 가지라. 좋은 자동차나 안정된 집이 없어도 행복할 있다. 경제적으로 갖춘 뒤에 결혼하려면 너무 늦을 있다.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일용할 양식과 필요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시작하길 바란다. 그리고 현재 가난하더라도 하나님의 무한한 복을 제한하지 말라.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부요한 분이시며, 우리에게 번영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 가정은 선한 부자 살겠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 선한 부자 부요하면서 부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항상 자족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을 습관화하라. 부정적 사고를 버리고 긍정적 사고와 말을 사용하라. 네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2)라는 약속을 믿으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기로 작정하면, 모든 복이 어김없이 당신의 삶과 가정에 넘칠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삶과 가정의 자리에 놓고 오직 그분만을 믿고 신뢰한다면 돈이나 재물은 우리 삶과 결혼생활에서 제자리를 찾게 것이다. 후에 일생을 마치면서 우리의 삶과 가정에게 부어주신 모든 복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놀라운 고백이 당신의 속에 있기를 바란다.

    히스기야가 더미들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대하 31:9­~10).

    결혼은 창조주가 주신 선물이다. 선물은 왜 주는가? 남을 위해 따로 구분하여 특별하게 주는 것이다. 결혼도 그렇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특별히 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의 모습과   문제점들만 받아들이지 말자. 성경을 통해 결혼을 이해하고 비전을 품어 보자.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청년들, 결혼을 한 부부들 모두 자녀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자. 좋으신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과 가정을 꾸리기를 축복한다.





    이기복 교수
    한동대학교 교수와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성경적 부모교실, 성경적 아내교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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