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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진적 페미니즘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로의 변질과 그 폐해
    인류역사상 전통적 가정공동체에 가장 적대적인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는 본래 페미니즘에서 파생되었다. 정확히 말해 이것은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의 변질된 시대사조이다. 페미니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적으로 변천해왔는데, 이는 크게 제1세대: 초기 페미니즘(1789~1914), 제2세대: 급진적 페미니즘(1914~1990), 제3세대: 젠더 이데올로기(1990~)로 구분된다. 19세기 중엽 여권신장 및 남녀평등 운동으로 태동한 초기 건전한 페미니즘은 ‘68혁명’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급진적으로 선회했다가, 21세기 들어와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시대사조로 급부상한 것이다.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가 같은 뿌리에서 연원하므로, 필자는 ‘젠더 페미니즘’(gender-feminism)이라는 시대사조를 주창하였다. 우리는 두 시대사조의 사상적 결합인 젠더 페미니즘을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양자를 함께 조망하고 분석해야 성정체성이 해체되는 이 시대의 문명사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파헤치고 실효성 있는 대처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은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는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강행한 중추세력, 결혼 및 가족구조를 해체시키는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어떤 연유로 이 세력은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 대신 사회·문화·심리적 성인 젠더(gender)를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주류 용어로 보편화시켰는가?’ 이 거대한 움직임의 주체는 다름 아닌 맑시즘(Marxism)에 사상적·정신적 기반을 둔 젠더 페미니스트들이었다. 20세기의 모든 가정해체 운동을 견인한 맑시즘은 역사상 최초의 계급투쟁이 일부일처제 안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투쟁이라고 강변했는데, 이들은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결혼 및 가족구조로부터 해방을 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젠더 페미니스트들을 대내외적으로 선동했던 가장 유력한 동인은 무엇인가? 이는 다름 아닌 남녀차별이 도무지 극복되지 않으니까 아예 생물학적 성별을 해체시키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여성차별의 강고한 질서인 결혼 및 가정을 파괴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들은 성차(性差)가 생물학적 결정이 아닌 사회적 관행의 결과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성별을 의미하는 섹스 대신 젠더를 그토록 종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인류역사에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 행위나 사상 체계를 발전시킨 것은 거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이를테면 폭동과 전쟁, 대량살상 등은 거의 모두 남성들이 자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패륜적 성혁명은 여성들이 주도한 혁명인데, 이것은 인류문명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랜 세월 극도로 억압받아왔던 여성들의 복잡한 심경, 곧 상처와 좌절, 분노를 읽을 수 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여성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과 슬픔, 수치와 굴욕을 겪으며 모질고 한많은 인생을 살다 갔는지 모른다.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태동한 페미니즘이 성정체성을 해체시키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것은 인류 문명사적으로 실로 애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역사적 배경, 곧 성차별 문제가 인류역사의 장구한 세월 동안 근절되지 못하고 고질적 악행으로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현실은 참혹한 역사이기에 이에 대해선 진정성 있는 문제 제기와 해결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 해결 방식이 성정체성의 해체를 통해 인륜(人倫)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고 고귀한 인간 존재를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또 다른 병폐가 되어 인류문명을 파탄시키는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젠더 페미니즘이 강행하는 패륜적 성혁명으로 말미암은 폐해가 성규범의 해체로 이어지고 건전한 가정공동체를 파괴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타락과 패륜을 확산시킨다는 사실은 거대한 대재앙의 단초가 될 것이다.




    젠더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성 약극화'가 심화되는 한국사회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 열풍은 대학가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트렌드가 됨으로써 소위 ‘페미니즘 전성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사실 장구한 남성 중심적인 역사를 감내하면서 숨죽이고 살아왔던 이 땅의 어머니들은 페미니즘 전성시대 속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현상이 극심한 남녀(男女) 분리주의를 통해 사회갈등 및 국민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치닫는 현실이다. 양성(兩性) 간에 조롱과 혐오가 점점 극단화(여혐·남혐·극혐)되다 보니, 이성(異性)에 대한 견제와 경계가 나날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 남녀가 서로를 생존에 해로운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남과 여로 양극화되는 ‘성(性) 양극화’, ‘젠더 전쟁’이라 불릴 만큼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7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50대 성인 남녀를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7%가 남녀 대립이 ‘심각하다’고 답변하였다. 68.2%는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였다.

    같은 시기 리얼미터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공동체 갈등 관련 조사’에서도 특히 20대가 바라본 가장 심각한 갈등 1위는 성 갈등(57%)이었다. 구세대와 달리 양성평등 관계 속에서 성장한 20대·30대 남성들은 각각 76%, 66%가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하면서 역차별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었던 이념갈등과 세대갈등, 노사갈등을 마침내 남녀갈등이 앞지르게 된 것이다.

    필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의 양상과 폐해를 이렇게 정리해본다.​1)

    1. 남녀의 상생과 연대가 아닌 극단적 대립과 반목으로 나아간다.

    2. 여성의 생물학적 기능(임신·출산)을 극도로 혐오하므로써 ‘젠더 중립성’(=성중립성, gender neutrality)으로 미화된 성별 해체를 지향한다.

    3. 성소수자 세력(LGBTQIA)에 동조함으로써 양성평등(sex equality)이 아닌 젠더 평등(=성평등, gender equality)을 추구한다.

    4. 이성애적 결혼을 비판하고 동성애적 파트너십을 옹호함으로써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에 적대적이다.

    5. 일부일처제(monogamy)에 부정적이고 폴리 아모리(polyamory, 복수연애)에 우호적인 자유연애주의를 확산시킨다.

    6. 소수의 엘리트 페미니스트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이익집단화함으로써 전체 여성의 실질적 권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 약자에 처한 소외계층 여성을 외면한다.

    이 세태를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건전한 여성운동이 정착하지 않고, 전통적 성윤리와 가정공동체를 해체시키는 퇴락한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현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특별히 1970년대 서구세계에서 성행했던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혼합물인 젠더 페미니즘이 21세기 대한민국을 강타한 현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서구 사회에서는 지난 세기에 급진적 페미니즘에 이어 젠더주의가 순차적으로 영향을 끼쳤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동시에 유입된 양대 시대사조가 반세기 지나 뒤늦게 우리나라 여성들을 격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파행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 한국의 페미니즘은 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한국여연’)을 중심으로 현실 정치에로의 진입에 주력해 왔는데, ‘한국여연’이 그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주요 활동은 여성인권 3법 등 젠더 의제의 법제화, 낙태죄 폐지, 성주류화 정책, 성평등 개헌운동, 여성정치세력화 등이다. 그러다가 페미니즘 논란이 크게 일어난 발단은, 2015년 여성 혐오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Megalia)와 여기서 파생된 극단적 남성 혐오 카페 ‘워마드’(Womad)에 엘리트 페미니스트들이 긴밀하게 관여하면서부터이다.


    [워마드 사이트]

    특별히 21대 총선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열풍 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이므로 새로 탄생한 ‘여성의 당’이 주목할만한데, ‘여성의 당’은 우려했던 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선정적인 페미니즘 이슈에만 영합하는 공약들을 발표하였다. 이로 보건대, 전체 여성들의 공동선(共同善)보다는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추구를 위해 움직이는 권력지향적·이익집단적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오늘의 파행적인 페미니즘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남성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표방함으로써 페미니즘의 보편적 이론마저 변질시켜 버린 일이다. 사실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신장 운동에서 출발한 초기 건전한 페미니즘은 젠더 페미니즘에 이르러 본 궤도에서 벗어나면서 외면당하게 되었다. 급기야 젠더 페미니즘은 자가당착에 빠짐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곤궁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세기의 쇠락한 시대사조를 21세기 대한민국에 확산시키고 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21세기 한국 사회는 남녀 간에 대결과 혐오를 부추김으로 ‘성별 해체-성윤리 해체-가정 해체’로 나아가는 젠더 페미니즘에서 벗어나서, 남녀가 서로 공존·상생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주의, 남성을 억압하는 여성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남성과 여성 모두의 존엄성이 회복된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실천, 곧 남녀가 서로를 적이 아닌 연대·협력하는 동반자로서 인정하고 건전한 성윤리와 가정공동체를 구축하며 양성평등을 중심부에 둔 여성운동, 권력지향적·이익집단적 페미니스트 중심에서 벗어나 극심한 성 양극화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여성운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남성 중심적인 위계구조의 진정성 있는 변화가 시급한 한국 교회 그런데 남성과 여성의 양성평등을 실현함에 있어서 필자는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기독교 복음의 전래로 말미암아 여성의 인권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성의 권리와 위상이 크게 진일보한 일반 사회와 대비되면서 양성평등 사안은 한국 교회에 대한 뼈아픈 질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젠더 페미니즘 세력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양성평등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피눈물을 흘린다고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교회 여성들을 충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신도들은 남신도보다 수적으로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설교와 교육, 인재양성, 정책결정 같은 교회의 중심적 리더십에서 배제된 가운데 주로 교회의 부수적인 일을 맡고 있다. 소수 교단에서만이 여성의 목사 안수와 장로 임직이 허용되지만, 남성 중심적인 위계구조 속에서 여성 사역자들은 여전히 남성 사역자들을 보조하는 역할로 제한된다. 안타까운 일은 남신도가 여신도를 하대하는 것도 유감스럽지만, 여신도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지적으로 우수한 여신도들이 남녀차별의 장벽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어 절망하거나,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불상사도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겠다는 교회 여성들의 헌신이 너무나 아깝게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문제는, 남성 목회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성범죄가 한국 교회 차원에서 근본적 성찰과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이다. 목회자들의 성폭력은 대부분의 경우 은폐·축소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징계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은 현실인데, 이것이 얼마나 한국 교회의 전도 및 선교사역을 후퇴시키고 얼마나 많은 영혼을 실족시키는지 모른다. 물론 이것을 목회자 개인의 일탈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당회와 노회, 총회의 책임마저 면책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들에 대해 한국 교회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점점 더 거세게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젠더 페미니즘에 응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당수 교회 여성들(특히 학교에서 인권과 성평등, 페미니즘 교육을 받고 성장한 20~30대 여성들)이 젠더 페미니즘에 영합하여 남성 중심적인 위계질서를 강하게성토하고 있는데, 이 추세는 나날이 심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일부 교회들에서는 여신도들의 요구에 따라 페미니즘 강좌가 열리기도 하는데, 초빙된 외부강사들이 대부분 젠더 페미니스트들이라는 매우 우려스러운 이야기도 전해 듣고 있다. 최근에 한 여성 신학자는 ‘교회에서 주입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이 아닌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폭로하면서, ‘목사님의 성차별적 설교도 기독교 가치관이 아닌 자기 가치관에 따라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다.4).

    2019년 12월 우파진영에서 창립된 ‘바른인권여성연합’(이하 바른인연)은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진정한 여성운동을 시작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는데, 필자는 매우 열악한 교회에서의 여성의 인권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 방안과 대안 제시가 마련되지 못하면, 피해의식을 느끼는 교회 여성들 중에 변종 페미니스트들이 양산되는 현 사태를 결코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여성들의 사명을 일깨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바른인연’은 정치세력화·이익집단화한 ‘한국여연’의 잘못된 전철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체 여성들(특히 소외계층 여성들)의 실질적 권익을 대변하는 진정성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인의 60~70%가 여성이라면, 설교와 교육, 인재양성, 정책결정 등에서 여성의 견해와 입장이 수렴되어야 비로소 한국 교회가 정의롭고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한국 교회의 패러다임을 개혁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예수께서는 여성을 심하게 차별한 유대교의 관행을 배격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와 구속 사역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하심으로써 당시 짓밟힌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셨다​3). 예수께서 그러셨듯이 한국 교회가 여성들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이들은 생명을 바쳐 하나님 사역에 헌신할 것이다. 신학계와 목회현장에 여성의 존엄성이 뿌리내려야 한국 교회가 젠더 페미니즘 세력을 향해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의 새로운 정립과 크리스천 여성의 사명 이 지점에서 우리는 크리스천 여성들의 책임적 역할과 사명이 문제해결의 중요한 관건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젠더 페미니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이 세대를 전복시키려는 위기의 시대에, 패륜적 성혁명은 인류역사상 매우 이례적으로 ‘여성 주도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미래를 거시적으로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인류의 안녕(安寧)을 최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사려깊은 책임감,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깨어있는 여성들의 헌신적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 이 시대에 절실히 요청된다.  


    그런데 크리스천 여성들의 사명을 견고하게 다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여성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남성 중심적인 위계질서가 공고하게 구축됨에 있어서 성경을 왜곡되게 번역하고 편협하게 해석한 기독교 신학자들의 부정적 영향을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력한 신학자들은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인류를 타락시킨 죄인으로 정죄하거나, 생리적 이유로 불결하다고 혐오하기도 했었다​5)

    그런데 매우 의아한 것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구원을 이루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을 원죄(原罪)의 근원으로 보는 관점이 유효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원어 성경에 대한 왜곡된 번역과 편협한 해석을 근거로 여성의 성직(聖職)과 공직(公職)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여성차별적인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일이다. 헬라어 성경의 번역과 해석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시되는 구절은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주목할 것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절)고 말씀했듯이 “그런즉 형제들아”(26절)라고 부르면서 남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잠잠할지니라”(30)고 바울 사도가 권고한 구절이 완전히 도외시된 일이다. 또한 동일한 헬라어 동사 ‘휘포타소’(ὑποτάσσω)가 남자에게는 ‘제재를 받다’(32절)로, 여자에게는 ‘복종하다’(34절)로 차별적으로 번역된 일이다. 더욱이 공동번역의 경우 원어에도 없는 ‘남자에게’가 첨부됨으로써,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라고 오역되었다.

    사실상 고전 14:34은 당시의 특수한 정황 속에서 남녀 그리스도인들의 단정한 자세를 권고한 말씀이다. 즉 고대 고린도 도시에 성행한 그리스 신화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us)에 대한 제의로 인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열광주의에 빠져 무질서하게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예배를 방해했던 남녀 성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잠잠해야 할 때에 잠잠하라고 당부한 말씀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절제되지 않은 방언과 예언이 불신자들에게 “미친 짓으로 보이지 않겠느냐”(23절)고 반문하면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므로”(33절)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40절)고 권고한 것이다. 그런데 남성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의 틀로 해석함으로써 성경 저자가 본래 말씀하려는 의미를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바울 서신을 전체 성경 본문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몇 구절만을 뽑아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로 삼아왔던 것이다. 특별히 바울이 ‘성차별주의자’로 오인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사도가 여성을 죄의 근원으로 간주했던 유대교 전통에 맞서 남녀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말씀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그뿐만 아니라 바울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루디아·뵈뵈·브리스가·유오디아·유니게 등)을 차별 없이 복음전파를 위한 사역자로 세워 동역했는가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결코 남성의 소유물 내지 성적인 욕구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오히려 남성과 동일하게 귀중한 ‘하나님의 형상’(창 1:27)으로 창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셨기에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시고 인격적으로 교제하셨으며 여성들을 남성 중심적인 체제로부터 자유케 하셨다. 남성 제자들과 달리 생명을 바쳐 주님을 따르고 전적으로 헌신했던 여인들이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마 28:1-10; 막 16:1-8; 눅 24:1-12; 요 20:1-10)이 된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안에서 여성들에게 ‘새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한다.


    남녀가 공존·상생하는 공동체, 

    양성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가? 성경에 입각하여 남성과 여성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위한 지향점은 과연 무엇인가?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의 거장 존 스토트(J. Stott)는 ‘하나님은 남녀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시는가?’라는 질문은 기독교 교회에 긴급한 과제를 던진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들이 성별 때문에 제도적·사회적 불의로 고통을 받는다는 확신에서 페미니즘이 태동했다고 말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성들의 정의에 대한 외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 특히 남성과 여성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위한 올바른 성경해석의 틀은 바로 ‘하나님 나라’(마 4:17; 막 1:15)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세계,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실현되는 세계인데, 즉 이것이 모든 것을 해석하는 기준, 바람직한 남녀관계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다.‘하나님 나라’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성별에 따라 명백히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영 안에서 ‘하나’이다(갈 3:28). 이런 연유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성(性)의 가치와 존엄성을 훼손할 권리를 갖지 않으며, 어떤 성도 다른 성에 의해 그의 가치와 존엄성을 침해당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차별하거나 멸시할 수 없고, 억압하거나 착취할 수 없다. 이를 침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6)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관계도 바람직한 남녀관계 정립을 위한 올바른 성경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서로 함께 한 몸을 이루는 가운데 끊임없이 상호내주하시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사랑하며 모든 일을 함께 행하신다. 삼위 하나님이 서로 맺는 관계는 결코 명령과 복종의 지배관계가 아닌, 사랑과 사귐의 평등한 관계이다. 무한한 사랑의 영 안에서 서로 하나됨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인 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한다. 이는 곧 강압적 명령과 복종의 지배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인격적 고유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사랑과 사귐의 평등한 관계이다​7)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맑시즘이 지상의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그토록 훼파하려는 성스러운 가족인데, 칼 맑스(K. Marx)는 “성스러운 가족(성부ㆍ성자ㆍ성령)의 비밀은 지상의 가족이다. 전자를 사라지게 하려면, 이론과 실제에서 후자가 먼저 파괴되어야 한다... 일부일처제는 촌충(기생충)과 같다”는 어록을 남겼다. 필자는 역으로 이 삼위일체 교리 안에서 바람직한 남녀관계에 대한 매우 귀중한 영적 통찰을 발견한다.

    21세기 한국 교회는 남성과 여성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필자는 남녀 파트너십이 바람직한 남녀관계 정립에 있어서 가장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협력하여 창조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상호 간에 인격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서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동역자이자 서로 나란히 코이노니아(koinonia)를 나누면서 살아가는 파트너이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마지막 시대에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요”(행 2:18; cf. 욜 2:29)라고 말씀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일한 계명을 주셨고, 예수님의 구원과 성령의 은사를 주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위해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부르셨다​8)




    남성과 여성은 주 안에서 서로의 존재로 인해 지음을 받고 결국 모두 하나님에게서 생겨남으로써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축해가는 동역자인 것이다: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 11:12).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 bingen)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the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 공동체 <21세기교회와 신학 포럼>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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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곽혜원, “젠더 페미니즘, 남녀의 상생 아닌 극단적 반목과 대립 부추겨”, 「국민일보」(2020.02.18).

    2)  “교회가 주입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 아닌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라는 사실 알리고 싶다”, 「뉴스앤조이」(2020.01.28).

    3) 김세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서울: 두란노, 2016), 46.

    4) 정용석, 『기독교 여성사』(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61-65.

    5) 곽혜원, 『현대세계의 위기와 하나님의 나라』(서울: 한들, 2008), 322.

    6) 곽혜원, 『삼위일체론 전통과 실천적 삶』(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185-195.

    7) 칼 맑스(K. Marx)는 “성스러운 가족(성부ㆍ성자ㆍ성령)의 비밀은 지상의 가족이다. 전자를 사라지게 하려면, 이론과 실제에서 후자가 먼저 파괴되어야 한다... 일부일처제는 촌충(기생충)과 같다”는 어록을 남겼다.

    8) 강호숙, 『성경적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462-466.

  • 64

    남탕에서 위에는 여자, 아래는 남자를 봤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학생들은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하고 성별에서 중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진짜 목욕탕에서 상체는 여자 하체는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면 부모님들은 어떻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성교육 현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을 갔는데 온탕에 있는 성인 남성이 수건으로 상체를 가리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고 탈의실에서 그 남성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몸을 보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머리카락을 여자처럼 기르고 가슴이 여자였어요.” 아이들은 눈으로 직접 목격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에 대해 신기하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했었다.

    성교육 시간 학생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면서 원하면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거나 낯선 상황이 아니라 호기심만 가득 찬 눈빛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며 혼란스러운 성정체성의 문제로 평범하게 살기 어렵다는 것과 호르몬 주사나 약을 지속적으로 처방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어야만 했다. 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꿈을 가지고 성취하면서 살아가는데 트랜스젠더는 꿈과 미래에 대한 도전과 성취보다는 성별을 바꾸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하기 때문에 행복을 찾지만 결코 행복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길게 해주면서 성염색체는 생명이 시작되는 수정의 순간 남자(XY)인지 여자(XX)인지 결정되는데 성별을 결정짓는 성염색체는 트랜스젠더처럼 성전환수술을 하거나 호르몬 주사를 평생 맞아도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다른 성교육 팀에서 만난 초등학생은 지역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았는데 성전환수술에 대해 읽었다면서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원한다면 어렵지만 성소수자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학생은 30분 이상을 성전환수술에 대한 이야기로 혼란스러워 하면서 책 제목이 <왜 내 고추는 친구 고추보다 작을까?>였다고 한다. 필자는 책을 구입해서 살펴보았다. 제목부터 자극적이고 초등학생을 겨냥한 책인데 내용에 꼭 ‘하리수의 몸은 어떻게 여자가 되었을까?’ 라는 주제로 성전환수술에 대해 알려주고 인터넷 검색창까지 클릭할 수 있도록 집필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봤어요!

    경기도 모지역에서 만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은 궁금한 것이 있다면서 질문지를 적었는데 그 내용은 “여성호르몬 작용, 여성의 외부생식기-음순, 자궁, 여성과 남성의 구조적·호르몬 차이, 페미니즘과 자위, 양성평등, 트랜스젠더,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가 한 몸에 있는 사람, 여유증, 생식기 관련 질병 치료”였다. 학생의 질문지를 보고 기관에 개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한 뒤 3회기 동안 만나면서 궁금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학생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과학과 자연재해에 대해 유튜브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일 년 전부터 트랜스젠더에 대한 내용을 꾸준히 시청했고 성별은 찾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성별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엄마 뱃속에 생명이 시작될 때 결정되는 것이라고 염색체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알려줘도 학생의 생각은 변하지 않고 자신이 보았던 유튜브 영상에 대한 내용만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호르몬 주사를 맞으려면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수술 비용은 비싼지, 태국에 가서 성전환수술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태국에서 수술을 하면 좋은지...’ 자신의 궁금증에 대해서만 알려달라고 하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화제를 돌려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족에 대해 질문을 해보았다.

    역시나 이 학생은 짐작대로 가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4남매 중 첫째였고 밑에 여동생 둘과 막내 남동생 그리고 부모님이 계셨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술에 취해 이유 없이 첫째인 이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했는데 여동생들은 절대 때리지 않고 예뻐했다는 것이다. 선물을 사줄 때도 여동생들만 사주었고 시간이 지나 막내가 태어났지만 같은 남자인 막내는 어리다는 이유로 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첫째 아들만 시설에 위탁해서 지금도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시설 내에서 친한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유튜브만 보게 되면서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아빠한테 사랑받지 못하고 차별 받는거야. 여자로 태어났으면 달랐을 텐데... 여자는 사랑받는 존재야’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정말 평범한 남학생이 부모의 잘못으로 인한 자신의 성에 대한 분노와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학생에게 동성간의 성행위를 하는 사람과 트랜스젠더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환경에 의한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하는데, 그 결과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며 수술 후에도 많은 부작용이 있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가정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말해주며 필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픈하였다. 정해진 시간 학생을 만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학생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이제는 동성간의 성행위에서 트랜스젠더 시대

    현장에서 학생들을 통해 어떤 질문을 많이 하는지 들어보면 성에 대한 관심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는 학생들에게 그냥 그럴 수 있는 것이고 ‘잠깐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여긴다.

    드라마 속에서도 작년부터 트랜스젠더에 대한 내용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오고 있다. 현재 시청률이 높은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도 인종차별과 트랜스젠더를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각본이 짜였으며 <하이바이 마마>는 남자아역 배우를 여장을 시켜서 주인공의 딸로 출연시키고 있다. 우리의 다음세대가 이제는 동성애를 넘어 트랜스젠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끔 모든 문화는 조작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나 볼 수 있는 도서, 손에 들고 다니는 유튜브, 인기 있는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성별을 바꾸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여기고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는 문제가 아니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차별이며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해 모험은 가능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렇다면 성교육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내가 태어난 그대로 남자라서 좋고, 여자라서 좋다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자신의 성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경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성별을 바꾸는 것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교육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성염색체는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에 있으며 수술이나 약물로 성염색체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알려주면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간단한 내용의 교육만으로도 성별은 외과적인 수술로 인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도서나 유튜브, 학교 성교육 시간에서는 전혀 이런 내용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에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읽는 도서에 대해서도 이젠 철저하게 지도하면서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을 해야한다.



    성교육 시간 Q&A Best3


    1. 성전환수술이 뭐에요?
    학생들은 성전환수술이라고도 하고 성변환수술이라고도 말한다. 성전환 수술은 원래부터 나에게 주어졌던 성별을 바꾸기 위한 수술을 하는 것인데, 성별은 수술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엄마 뱃속에서 생명이 생기는 순간 우리에게 ‘하나의 성’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아빠와 엄마의 성염색체가 만나게 되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결정이 되는 것이다. 몸의 구석구석 성염색체는 퍼져 있어서 단순히 수술을 하거나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도 완벽하게 성별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2. 성전환수술을 했다가 다시 돌아갈 수 있나요?
    다시 돌아가는 복원수술은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에서는 사례가 있지만 수술을 할 때마다 사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남성·여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과 몸이 망가진다고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남성의 몸을 지니고도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수술을 결정하지만 나중에 후회를 해서 평생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말해준다.
    3. 생리통이 무서운데 어떻게 하죠?
    여학생의 경우 초경을 앞두고 월경 전 증후군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거나 초경 후 몸의 불편함을 느끼면서 여성의 특권인 생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 이차성징에 대한 교육을 되도록 편안하고 좋은 느낌으로 교육하는 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생리를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중에 결혼을 안 할 건데 생리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다면 자궁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생리를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들 (식욕부진, 과식, 두통, 아랫배 통증 등)이 있지만 생리기간 내내 일어나기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이고, 필요하면 산부인과에 엄마와 함께 가서 간단한 진료를 받고 진통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초경이 시작되면서 복통이 심하다면 반드시 산부인과에 한 번은 내원을 하는 것이 좋다.

    여자가 생리를 시작한다는 것은 앞으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신호를 몸이 알려주는 것이다. 엄마도 생리를 안했다면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 딸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며 남자에게는 없는 여자만의 특권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가정 내에서는 면 생리대를 준비해서 가능한 복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마트에 가서 위생팬티와 생리대를 구입하고 가정에서 생리대 착용을 해보며 성장을 축하해주는 것이 좋다.

    최경화 소장
    다음세대교육연구소 소장, 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 성교육 경력10년, CTS 다음세대 크리스찬 성교육클럽(다크성클) 출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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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 해체의 시대 문명과 생로병사 해체 프로젝트
    ‘해체의 문명’으로 일컬어지는 21세기는 이전 세기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쟁의 세기’로 일컬어졌던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했었는데, 지난 세기 내내 전 세계를 참혹한 이데올로기 냉전체제로 몰아갔던 맑시즘(Marxism)이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인류 문명에 대해 한층 더 심화된 불안감을 감지하고 있다. ‘과연 이 시대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가?’ 인류 역사상 많은 문명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했지만, 오늘날 이 시대의 위기는 과거의 위기와 전혀 성격을 달리하여 우리를 경악케 한다.


    맑시즘은 한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듯했으나, 21세기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인류 문명을 가공할만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라고 불리는데,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의 가면을 쓴 맑시즘으로써 공산주의보다 더 심각하게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전통 기독교 사상을 전면 부정하는 후기 구조주의(post-structuralism)1 와 인식을 같은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 이후 글로벌 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 특징은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과 절대적 진리의 거부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 시대문명의 가장 주목할 만한 동향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대담론과 절대적 진리 가운데서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자연질서를 해체시키려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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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생로병사 중에서 죽음을 해체시키려는 움직임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파생시킨 또 다른 아류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또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데, 이 양대 휴머니즘은 유전자 조작, 생명 연장 등의 첨단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변형함으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대사조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거대기업들,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 산업(IT) 거부들이 불멸(不滅)을 실현해줄 생명의 묘약을 찾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와 과학자, 의학자들 역시 종교의 도움 없이 육체적 영생(永生)의 문을 열어줄 열쇠를 발견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멸과 영생 프로젝트에 돌입한 글로벌 기업 중에서 대표적으로 구글(Google)은 2013년에 바이오 벤처회사인 ‘칼리코’(Calico)를 창립하면서 ‘죽음의 해결’(Solve Death)을 창립목표로 내세웠다. 

    그런데 인간의 삶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죽음을 해체시키려는 움직임보다 더 경악할만한 일이 우리 문명사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 누구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성별(性別)이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철폐하려는 가공할만한 움직임이다. 이 젠더 이데올로기 역시 포스트모더니즘과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등장한 시대사조인데, 인간의 출생 시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문화·심리적 성인 ‘젠더’(gender)를 통해 스스로 선택에 의해 성별을 결정할 수 있다고 강변함으로써 남녀 고유의 천부적 성정체성을 허물어버리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인간 존재의 본질이 되는 성별의 정체성이 파괴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유념할 때, 이것은 인류 문명사적으로 대단히 가공할만한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해체의 문명에서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해체 프로젝트를 정리하면 이렇다. 즉 죽음의 해체는 ‘불멸과 영생 프로젝트’로 구현된다면, 성별의 해체는 ‘젠더 주류화(= 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 프로젝트’로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떤 영적 교훈을 발견하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적 현주소는 과연 어떠한가? 이 시대문명은 대관절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가? 현재 세계 학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히브리대 교수이자 게이로 커밍아웃한 유발 하라리(Y. N. Harari)​2는 이 시대인들이 최고로 희구하는 바를 피력했는데​3, 이를 통해 필자는 21세기 문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즉 인류가 오랜 가난과 전쟁의 참혹한 역사를 겪고 나서 엄청난 번영과 건강과 평화를 구가한 다음에는 이제 죽음을 극복하고 행복을 누리고 신(神)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거라는 것이다. 바로 신처럼 영생불사하면서 성적인 쾌락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분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허용하는 시대사조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로 기사회생한 맑시즘의 인류 문명사 위협
     

    맑시즘의 인류 문명사 위협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끝나지 않는데,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를 통해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다시금 우리 시대에 암울한 그림자를 던지기 때문이다. 맑시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지만, 사실상 이것은 이미 여러 사상적 경로를 통해 입증되었다.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시대사조들에는 맑시즘의 망령이 전방위적으로 드리워져 있는데, 특히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뿌리인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은 맑시즘의 지대한 영향으로 세력을 공고히 다져왔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성’(性)의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성정치-성혁명 이론’과 ‘68혁명’이 만나면서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는데, 젠더 이데올로기에 자양분을 주었던 ‘68혁명’과 ‘성정치-성혁명 이론’ 역시 모두 맑시즘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근대세계에 총체적으로 반발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직접적으로 부각시킨 68혁명은 네오-맑시즘(Neo-Marxism)의 영향을 받아 반(反)체제·반(反)문화의 기치를 올린 이후 히피(hippe) 문화와 베트남 반전(反戰) 운동을 통해 국제화·조직화된 좌파 단체들과 결탁하였다. 68혁명 세력은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에 열광하여 중국 현대사의 정치·문화적 대재앙이었던 문화혁명을 벤치마킹함으로써 68혁명을 전 세계적 문화혁명으로 확산시켰다. 무엇보다도 68혁명의 핵심은 서구세계가 자랑하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영향으로 형성된 서구적 근대성의 해체이므로, 반(反)기독교적인 색체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 68혁명은 유럽의 사유체계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킴으로써, 이들이 성장하여 글로벌 정치·경제·사화·문화계 전반을 장악하게 된 오늘날 서구세계를 또 다시 뒤집어놓게 된 것이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방황하던 21세기 한국의 좌파는, 유럽의 68혁명을 대안으로 여기는 가운데 성소수자 투쟁으로 세력결집에 성공한 유럽 좌파의 노선을 추종하는 상황이다.

    68혁명에 의해 사후 부활한 빌헬름 라이히(W. Reich)는 체제 전복이론인 맑시즘(Marxism과 성욕 억압이론인 프로이트주의(Freudianism)를 결합하여 성충동 해방이론인 성정치-성혁명 이론을 주창하면서, 진정한 해방이란 성해방을 동반해야 하며 성혁명을 이루기 위해선 성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라이히가 획책한 성정치-성혁명 전략의 핵심 도구였는데, 이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성애화(sexualization)가 집중 공략되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하여 섹스폴(Sex-Pol) 운동을 조직했던 라이히는 당시 소련연방이 행했던 동성애 금지와 임신중절의 금지, 청소년들의 성적 자유 억압에 불평을 제기하기도 했다. 라이히 이후 성정치-성혁명 이론은 급진적 페미니즘과 결탁함으로써, 여성 위에 군림하는 헤게모니(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에 대한 파괴는 물론 남녀 성정체성을 해체시켜야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젠더주의로 변모하게 되었다.

    여기서 급진적 페미니즘의 변질된 형태로 발흥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형성과정에 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이 점차로 변해왔는데, 이를 크게 제1세대(1789~1914), 제2세대(1914~1990), 제3세대(1990~)라고 지칭한다. 19세기 중엽 여권신장·남녀평등 운동으로 시작한 초기의 건전한 페미니즘은 68혁명을 분기점으로 제2세대로 넘어가면서 순수한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변천했는데, 급진적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임신·출산 같은 생물학적인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이루려는 시대사조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제3세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종하는 동성애 옹호세력이 강행하는 성정치-성혁명 이론과 결탁하여 인류 사회의 근간인 성별질서와 가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것이다. 이처럼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는 한 뿌리에서 연원하므로, 이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필자는 ‘젠더 페미니즘’이라고 지칭한다. 

    맑시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상호 긴밀한 연관성은 도처에서 드러남으로써 너무나 분명하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동성애를 단순히 동성 간의 애정행각이나 성도덕 붕괴의 측면에서만 인식했지만, 젠더 이데올로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은 성소수자들의 정치투쟁을 사회주의 혁명 그 자체로 보고 있다​4. 자본주의를 철폐하려면 이를 지탱하는 가정과 인간의 ‘성’을 혁명적으로 재구성해야만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가정과 건전한 성윤리의 배후에서 견고한 사회적 기반의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하는 기독교를 파괴시켜야만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 때문에 맑시즘 정치투쟁 현장에는 성소수자들의 정치투쟁 또한 동시적 주제로 다뤄지며, 동성애를 비판하는 기독교 대(對) 동성애 옹호 진영의 일명 ‘악의 연합’ 간의 일대 영적·사상적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명 위기의 중심점에 선 시대사조, 젠더 이데올로기 

    필자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 할수록 이 이데올로기가 21세기 시대문명을 위기로 몰아넣는 중심점에 선 시대사조라는 확증을 갖게 된다. 특별히 젠더는 그 위기의 중심점에 놓인 핵심 키워드, 위기를 해명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근본적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래 젠더는 언어학에서 명사(중성형)에 사용되던 단순한 문법용어에 불과했지만, 1950년대에 ‘존 머니’(J. Money)라는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이자 성심리학자에 의해 실험적으로 사용된 이후 1970년대에 들어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서구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결정적 분기점으로 젠더 용어가 공식화되었는데, 이때부터 젠더는 사회·문화·심리적 성으로 명시되었고 섹스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성관련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일개 성심리학자가 실험적으로 사용했던 용어, 그것도 결국 사람들을 기만한 허위 실험으로 판명된 희대의 사건에 오용되었던 용어가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남녀를 위시하여 모든 성소수자들의 성정체성을 포괄하는 단어로 전환된 것은, 참으로 참람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젠더란 용어가 성소수자들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포석을 깔아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영어권에서는 섹스와 젠더가 명백히 구분되기 때문에 젠더의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용어가 모두 동일하게 ‘성’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젠더에 해당하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번역이 매우 어려운데, 이제는 종전처럼 ‘섹스’와 ‘젠더’를 모두 ‘성’으로 모호하게 번역하지 말고, 섹스와 젠더로 명확히 구분하여 번역하면서 사회 전반에 젠더의 위험한 실체를 알릴 필요성이 있다. 

    여기서 인간의 성(性)에 대한 이해의 변천사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성은 출생 때 타고나는 생물학적 성(sex)에 따라 남성(男性) 또는 여성(女性)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었다. 과거에는 이 생물학적 성으로 인간의 성별을 남녀 이분법적으로 이해했고, 오늘날 또 다른 성으로 통용되는 젠더(gender)는 불필요하였다. 그런데 젠더 이데올로기가 널리 확산되면서 성을 다원주의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성을 성기·염색체·성호르몬으로 결정되는 생물학적 섹스와 사회·문화·심리적 성으로 간주되는 젠더로 구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날 섹스는 성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점차 제한되고, 젠더가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주류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섹스로 성별을 결정했을 때는 섹스 주류화(sex mainstreaming)였다면, 이제는 젠더가 주류가 되게 하자는 의미에서 젠더주류화(gender mainstreaming)가 서구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젠더에 입각하여 성을 다원주의적으로 이해하면서 파생되는 심각한 문제는 젠더의 실체가 기분과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성이다 보니까, 각자가 스스로 느끼는 대로 성별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정체성이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젠더는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닌 시시각각 사람들의 심리 상태와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급기야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용인하기 시작했고, 수십 가지의 온갖 괴이하고 비정상적인 젠더 퀴어들(gender queer)을 양산하게 되었다. 사실상 젠더 이데올로기는 각종 부도덕한 성관계를 맺는 젠더 퀴어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 그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이러한 젠더주의가 글로벌 세계에 널리 확산함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젠더주의의 대표주자이자 이 시대 학술계의 파워엘리트(power elite)인 주디스 버틀러(J. Butler)이다. 그는 성정체성 해체에 주력할 뿐만 아니라, 젠더주의의 핵심전략인 젠더 주류화의 이론적·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버틀러는 특히 자신의 저서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에서 섹스가 젠더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젠더가 섹스에 의해 규정된다고 강변한다. 즉 섹스는 젠더에 앞서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관습과 기대에 의해 후천적으로 장시간에 걸쳐 형성된 젠더라는 정체성이 더 자연화된 개념이라는 것이다​5. 또한 버틀러는 젠더란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젠더 간에 불가피 트러블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기술하면서 그 명백한 증거가 ‘동성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에 근거하여 그는 동성애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하고 성소수자들(LGBTIQA)을 규합하는데, 이것은 버틀러 자신이 레즈비언이기에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행하는 패륜적 성혁명과 인류 문명사의 대재앙 

    젠더 이데올로기의 막강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장구한 세월 동안 인류 사회를 보편타당하게 지배해왔던 관습과 규범이 지난 50년 사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6​. 천부적으로 부여된 남성과 여성 고유의 신체적 기능은 물론 남녀 양성이 결합하여 이루는 가정 및 결혼제도 역시 해체되고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들어와 북미와 서유럽에서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 가열차게 강행되고 있는데, 성혁명이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를 해체시키고 온갖 다양한 젠더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프리섹스를 옹호함으로써 전통적 결혼 및 가정 해체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젠더주의는 성규범을 와해시키고 도덕적·윤리적 기준의 해체를 강요함으로써, 예로부터 전승된 숭고한 가치개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젠더주의의 내용으로 포스트모던 세계를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이것이 인류 문명사에 어떤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행하는 성혁명의 핵심은 바로 성규범의 해체이며, 그로 인한 악영향은 사회 전체의 성애화(性愛化)를 통한 타락과 패륜의 확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혁명이 한창 진행 중인 서구세계에서는 성규범이 와해되고 도덕적·윤리적 기준의 해체가 강요됨으로써, 음란의 규범이 형법을 통해 강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과 관련된 강력한 규범들이 급속도로 풀려서 사람들이 점점 더 성적으로 문란해지고, 특히 동성애가 또 하나의 묵인된 성문화, 또 다른 인류의 대체적 쾌락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성도덕의 규제 완화는 문화가 부패한다는 징후인데, 이것은 개인에게 손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혼의 급증으로 인한 가족공동체의 붕괴, 광범위한 정신·심리적 장애의 만연, 사라져가는 질병이었던 성병의 전염병적 유행, 엄청난 수효의 태아를 죽이는 일 등은 사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는 선악을 위한 나침반이 필요한데, 특히 성은 도덕의 닻에서 분리될 때 필연적으로 영적·사회적 붕괴가 일어나기에 이에 대한 올바른 지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생사와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성규범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장 사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 성도덕이 무너져 버리면 한 개인은 물론 가정공동체와 사회공동체가 무너지고, 더 나아가 국가공동체, 심지어 문명 전체가 붕괴된다. 이런 연유에서 인류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성적 일탈을 강력한 사회적·법률적 제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성규범을 매우 엄격한 처벌 규정으로 보호했던 것이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이든 비(非)그리스도인이든 종교적 이해관계를 떠나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동성애는 어느 사회에서나 비난과 반대에 봉착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에 대해 독일 튀빙엔(Tübingen) 대학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페터 바이어하우스(P. Beyerhaus) 교수는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즉 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정치적 신분제를 전복시킨 혁명), 1917년 볼셰비키 혁명(경제적 계급제를 전복시킨 혁명)과 함께 젠더주류화를 ‘제3의 세계사적 혁명’(생물학적 질서를 전복시킨 문화인류학적 성혁명)이라고 일컬으면서 남녀의 성별 질서, 결혼과 가정의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인류 문명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혁명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바이어하우스는 이것이 남녀의 생물학적 성별을 창조질서로써 주신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부정하는 사탄적 원천을 지니며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신론적·무신론적 이데올로기라고 역설하였다​7. 이미 2012년 12월 21일에 교황 베네딕트 16세도 젠더 이데올로기 안에 깊이 숨겨진 비(非)진리성과 문화인류학적 혁명을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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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 bingen)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the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 공동체 <21세기교회와 신학 포럼>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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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후기 구조주의는 보편적 이성과 절대적 진리에 입각한 구조를 해체하려는 급진적 시대사조로서 자크 데리다(J. Derrida), 미셀 푸코(M. Foucault), 질 들뢰즈(G. Deleuze), 자크 라캉(J. Lacan), 주디스 버틀러(J. Butler) 등이 후기 구조주의자로 분류된다.

    2.유발 하라리는 2018년 유튜브에 동영상 게이로 산다는 것”(On being Gay)을 올리고 커밍아웃하면서 자신이 어릴 때부터 소년을 좋아했었고, 현재는 동거하는 남성을 남편이라고 부르면서 부부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성애가 자신의 연구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고 발언함으로써 글로벌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3. 장구한 세월 인류는 기아와 역병,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왔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과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不滅)과 행복(幸福), 신성(神性)이 될 것이다. 굶주림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인데, 곧 신()이 된 인간(人間),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되려고 한다”: Y. N. Harari/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서울: 김영사, 2017), 39.

    4. Cf. 이정훈,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17f.

    5. J. Butler/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서울: 문학동네, 2008).


  • 62

    2020년 1월과 2월에 걸쳐 젠더전환을 둘러싼 법적 문제가 한국 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각한 도전으로 등장하였다. 군복무 중에 여성으로 전환한 남성이 여군으로 계속 복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으나 군으로부터 전역조치를 받았으며, 수험 기간 중에 여성으로 전환한 남성이 여대에 합격하였으나 관계자들의 거센 항의와 반발로 등록을 포기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젠더전환의 공론화를 위한 의도적인 기획으로 의심된다. 특히 성(젠더)전환수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성별변경을 허용하는 하급심 법원의 결정들이 반복되면서 이러한 공론화가 이제 불가피하게 되었다.

    전환수술을 거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성별변경을 하거나 젠더전환자를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배경에 욕야카르타 원칙(Yogyakarta Principles)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찍이 2008.8.25.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의 절차 및 기준에 관한 결정에서 욕야카르타 원칙을 판단의 참고자료로 원용한 바 있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젠더 퀴어의 권리선언으로 알려진 욕야카르타 원칙은 2006년 제정된 29개 원칙(이하,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과 2017년 「욕야카르타 원칙 플러스 10」에서 추가된 9개 원칙(이하, “2017년 욕야카르타 원칙 플러스 10”)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을 살펴보기로 한다.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의 구성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은 크게 전문(前文, preamble), 29개 원칙, 추가 권고사항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은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매우 당연한 주장을 내세우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혹은 기타 신분 등 어떠한 종류의 구별 없이 인권을 향유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그리고 종래 불분명하게 사용되었던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개념의 정의를 최초로 명문화하고, 젠더 퀴어의 권리가 국제인권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국제인권법은 모든 인권, 시민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사회적 권리를 완전하게 누리는 데 있어서 어떠한 차별도 절대 금지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는 것, 성적 권리·성적 지향·젠더 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남녀평등을 실현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국가는 한쪽 성이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는 생각이나 남녀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편견과 관습을 없애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며”

    나아가 젠더 퀴어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적절한 법체제의 수립을 제시한다.

    위 전문에 이어 29개의 원칙과 이에 관한 국가 의무가 상세히 규정되고 있다. 욕야카르타 원칙은 다음 네 가지 핵심요소를 기초로 수립되었다. 네 가지 핵심요소는 「차별금지」, 「핍박으로부터의 보호」, 「권능부여」, 「책임」이다.
    먼저 「차별금지」를 내세운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지닌 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평등한 대우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본다. 그래서 「핍박으로부터의 보호」가 요청된다. 고문, 성적 학대, 의료시술의 강제 등을 법률로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권능부여(empowerment)」가 요구된다. 불리한 처분을 금지하는 것 이상으로, 젠더 퀴어로 하여금 공동체에 충분히 참여하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교육, 사회보장 또는 침해된 이익에 대한 보상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책임」이 강조된다. 국가 및 국가기관은 모든 인권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위 핵심요소 순서에 따라 29개 원칙이 아래와 같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의 29개 항목

    제1원칙: 인권을 보편적으로 향유할 권리
    제2원칙: 평등과 차별금지의 권리
    제3원칙: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
    제4원칙: 생명에 대한 권리
    제5원칙: 인신의 안전에 대한 권리
    제6원칙: 사생활에 대한 권리
    제7원칙: 자의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
    제8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제9원칙: 구금상태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
    제10원칙: 고문과 잔인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
    제11원칙: 인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 거래, 매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제12원칙: 노동권
    제13원칙: 사회보장과 기타 사회보호조치에 대한 권리
    제14원칙: 적절한 생활수준의 권리
    제15원칙: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제16원칙: 교육권
    제17원칙: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
    제18원칙: 의료 남용으로부터의 보호
    제19원칙: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의 권리
    제20원칙: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21원칙: 사상,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22원칙: 이동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23원칙: 망명을 요청할 권리
    제24원칙: 가족을 형성할 권리
    제25원칙: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
    제26원칙: 문화 생활에 참여할 권리
    제27원칙: 인권을 증진시킬 권리
    제28원칙: 효과적인 구제와 보상에 대한 권리
    제29원칙: 책임

    29개 원칙은 내용상 다음과 같이 여덟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원칙 1에서 원칙 3은 인권의 보편성
    인권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것 그리고 법 앞에서 인정받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② 원칙 4에서 원칙 11은 생명 및 신체안전의 권리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생명, 폭력과 고문으로부터의 자유, 사생활의 보호, 재판절차에의 접근권, 자의적인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③ 원칙 12에서 원칙 18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여기서는 고용, 주거, 사회보장, 교육 및 건강을 포함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의 향유에서 차별금지를 강조하고 있다.

    ④ 원칙 19에서 원칙 21은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여기서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의 정체성 및 성(sexuality)을 드러내는 자유와, 집회에 평화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⑤ 원칙 22과 원칙 23은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박해로부터 비호(庇護, asylum)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⑥ 원칙 24에서 원칙 26은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 없이 가족생활, 공적 업무 및 문화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⑦ 원칙 27은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 없이 인권을 보호·증진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이 분야의 인권옹호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⑧ 원칙 28과 원칙 29는 인권침해자의 책임을 추궁하고 피해를 당한 자들에게 적절한 구제수단을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의 주요 내용

    욕야카르타 원칙은 국제법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국가 의무를 젠더 퀴어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상당한 부분의 내용은 젠더 퀴어는 물론 일반 사람에게도 공히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적잖은 내용들은 주로 젠더 퀴어를 염두에 둔 까닭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법 규범과 현실을 고려할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은 제2원칙 「평등과 차별금지의 권리」, 제3원칙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 제6원칙 「사생활에 대한 권리」, 제16원칙 「교육권」, 제18원칙 「의료 남용으로부터의 보호」, 제19원칙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의 권리」, 제20원칙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24원칙 「가족을 형성할 권리」, 제27원칙 「인권을 증진시킬 권리」, 제28원칙 「효과적인 구제와 보상에 대한 권리」, 제29원칙 「책임」 등이다. 이 중에서도 양성평등과 전통적인 결혼 및 가족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은 제2원칙 「평등과 차별금지의 권리」, 제19원칙 「의견 및 표현의 자유」, 제20원칙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제24원칙 「가정을 형성할 권리」 등이다. 이들은 동성간 성행위 처벌조항의 폐지, 차별행위의 금지, 젠더 퀴어 행사 개최의 자유, 동성결혼의 합법화의 주요 논거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세계적으로 젠더 퀴어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서 평가되는 원칙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한 것으로 동성애주의자들은 제2원칙 「평등과 차별금지의 권리」, 제3원칙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 제6원칙 「사생활에 대한 권리」, 제18원칙 「의료 남용으로부터의 보호」을 들고 있다.

    (1) 제2원칙: 평등과 차별금지의 권리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 중에서 차별금지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것은 제2원칙 「평등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이다. 다른 경우와 동일하게 제2원칙의 시작은 매우 타당한 명제로 시작한다. 문제는 국가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세부 지침들이다. 밑줄 친 부분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A. 평등의 원칙과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의 원칙이 헌법이나 다른 적합한 법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법 개정이나 해석을 이용하여 이 원칙들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고, 실제로 이 원칙들이 효과적으로 실현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B. 동의 연령(age of consent) 이상에서의 동성 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금지하거나, 사실상 이를 금지하기 위해 활용되는 형법 및 기타 법적 조항을 폐기하고, 동의 연령은 동성 간 및 이성 간 성행위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C. 공적, 사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철폐하기 위해 적절한 입법조치나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
    D.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인권을 똑같이 향유하고 행사하도록 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이들이 적정한 수준까지 성장하도록 만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차별로 취급되지 않아야 한다.
    E. 국가가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에 대응할 때에는, 이 차별이 다른 형태의 차별과 중첩되는 양상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F. 특정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는 사고와 관련된 편견적, 차별적 태도나 행동을 철폐하기 위해,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존재로서 법 앞에 평등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은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욕야카르타 원칙은 차별사유 중에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게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을 헌법이나 기타 법률에 명시하거나 법원 등 국가기관의 유권해석으로 확립할 것을 요구한다(A). 이는 각 국가마다 개별 상황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는 입법권 및 사법권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성교에 대한 동의 연령을 넘은 동성 간의 사적인 성행위를 전적으로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B). 즉 우리나라 현행 군형법의 해당 조항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종립학교나 종교기관에서 설립 취지에 따라 동성애자를 고용하지 않는 것을 금지하라고 요구한다(C). 이는 종교의 자유와 직업수행 내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성애 및 남녀간 결혼의 중요성 또는 동성애의 위험성을 교육하는 것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이성애를 동일한 것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한다(F). 더 나아가 동성애자를 우대하는 적극적 우대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이러한 우대는 결코 차별이 아니라고 강변한다(D).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불리한) 차별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유리한) 차별을 만들어내는 자기모순이라고 하겠다.



    (2) 제3원칙: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
    제3원칙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는 “모든 사람은 어디
    에서나 법 앞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삶의 모든 측면에서 법적 권한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스스로 규정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은 인격의 일부이며, 자기결정·존엄성·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의 하나이다. 법적으로 젠더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으로서 의료적 시술, 예컨대 성전환 수술이나, 불임, 호르몬 치료 등이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이나 자녀여부와 같은 상태를 젠더 정체성에 대한 법적 인정을 막기 위한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제시된 국가의무 중에 특히 주목할 것은 “B. 개인이 스스로 규정한 젠더 정체성이 충분히 존중되고 법적으로 인정되도록 필요한 모든 법적, 행정적 및 기타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와 “C. 출생증명서, 여권, 선거인 명부, 기타 서류 등 개인의 젠더/성별이 표기된 국가발행의 모든 신분서류에 개인이 스스로 내면적으로 규정한 젠더 정체성이 반영되게 하는 절차가 마련되는데 필요한 모든 법적, 행정적 및 기타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이다.

    원래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이념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나치독일에 의하여 법적 권리가 전적으로 부인되었던 유대인을 위하여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가 주장된 것이다. 이 권리는 법적 정체성과 시민권을 부정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의 성과물이었다. 그런데 이 권리가 젠더 퀴어에게 교묘하게 적용된 것이다. 사실상 이 권리는 수술 없이 성(젠더)전환을 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내용의 법제가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몰타 등에서 젠더의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3) 제6원칙: 사생활에 대한 권리
    제6원칙 「사생활에 대한 권리」는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과 상관없이 누구도 자의적, 불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고 사생활을 누릴 자격이 있다. 여기에는 가족, 집, 통신에 대한 측면뿐 아니라 명예와 명성에 대한 불법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포함한다. 사생활에 대한 권리에는 대체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그리고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타인과의 성적 또는 그 밖의 관계에 대한 결정 및 선택뿐 아니라,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포함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종래 사생활에 대한 권리의 가장 기본적인 보호 영역은 사생활의 평온이 깨트려지지 않은 자유였다. 점차 사회적 상황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보호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다. 그런데 제6원칙은 젠더 퀴어의 입장에서 이러한 보호영역을 대단히 넓게 확장하였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과 선택’ 그리고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타인과의 성적 또는 기타 관계 형성에 대한 결정과 선택’도 그 보호범위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는 사생활의 범주를 ‘장소의 사생활’에서 ‘결정의 사생활’, 나아가 ‘인간관계의 사생활’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동성간 성행위 처벌법(anti-sodomy act)은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동성간 친밀한 관계 형성은 자율성을 누릴 권리의 일부이며, 개인 존엄성의 불가분한 일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묘한 논리에 따라, 제6원칙은 “A. 동의 연령 이상에서 상호 합의된 성행위를 포함하여 개인이 사적인 영역(private sphere), 사적인 의사결정(intimate decisions), 인간관계(human relations)를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과 상관없이 자의적 간섭을 받지 않고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입법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 B. 동의 연령 이상에서의 상호 합의된 성행위를 범죄화하는 모든 법을 폐기하고, 동의 연령이 동성간 및 이성간 성행위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하여야 한다.”를 국가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E. 동의 연령 이상에서 상호 합의된 성행위나 젠더 정체성과 관련되어 유치되고 있거나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고 감금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방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4) 제18원칙: 의료 남용으로부터의 보호
    제18원칙 「의료 남용으로부터 보호」는 “누구도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그 어떤 형태의 의료적 또는 심리적 치료나 시술, 검진을 강제 당하거나 의료시설에 감금되어서는 안 된다. 분류에 관해 반대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의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그 자체는 의료문제가 아니며, 치료되거나 교정되거나 억제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밑줄 친 부분으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결코 질병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다(물론 단서를 달고 있지만). 그래서 “의료적, 심리적 치료나 상담에서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치료, 교정, 억제시켜야 할 의료적 문제로서 다루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국가의무를 명시하고 있다(F). 또한 일정한 요건 하에서 “누구도 젠더 정체성을 강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의료적 시술로써 아동의 신체를 불가역적으로 변형하지 못하도록 이에 필요한 모든 입법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고 있다(B). 이는 간성(間性)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요구는 간성이 그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할 존재이지, 의료적 치료를 요하는 의료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욕야카르타 원칙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앞에서 본 것처럼, 욕야카르타 원칙은 일반적 자유권 이상으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권리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인권 개념의 불가분성(indivisibility)을 반영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젠더 퀴어의 권리를 전체적으로 두루 보장하여야 한다고 강변한다.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의 기초자들은 이 원칙이 당시 국제인권법에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여기서 제시된 국가 의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국제법에서 논리적으로 유추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종전의 국제인권법이나 각종 협약에 명시된 규정 중에서 부분적으로 따온 것들이 많았다. 예컨대 전문에 나타난 "편견과 관습을 철폐하려는"이라는 표현은 UN 여성차별철폐협약에서 끌어온 것이다. 그밖에 상당한 부분도 UN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 등에 규정된 내용을 가져와서 다듬은 것이다. 그 결과, 2006년 욕야카르타 원칙은 매우 그럴듯한 외관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욕야카르타 원칙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일방적인 주장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정말 국제인권법의 「원칙」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욕야카르타 원칙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더욱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한 지혜로운 분별력이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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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선필 교수
    서울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취득하였고, 한국입법학회장,한국헌법학회 부회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현재 홍익대 법대 학장으로 봉직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자문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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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더니즘, ‘프랑스 역병’ 그리고 문화맑시즘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처럼 문화맑시즘을 추구한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학자가 바로 르네 지라르다.
    사실 미국에서 소위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이 큰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1966년에 지라르가 주도해서 조직된 존스 홉킨스대학에서 열린 “비평언어와 인간과학”(The Language of Criticism and the Sciences of Man)이라는 제목의 학술대회였다. 이 모임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자크 라깡(Jacques Lacan),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루시엥 골드만(Lucien Goldmann) 등이 초대되었다. 이 학술대회를 통해서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이 탄생했다. 이 대회는 미국에서 프랑스 철학과 이론을 유행시킨 분수령이 되었으며, 데리다도 이 대회를 출발점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가 여기에서 발표한 「인간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그리고 놀이」(La structure, le signe et le jeu dans le discours des sciences humaines)는 해체주의 철학의 고전적 텍스트 중 하나로 여겨진다.​1)




    1966년 이 학술대회를 주도한 지라르는 이 학술대회를 통해서 프랑스 역병(the French plague)이 미국 대학가에 들어와 휩쓸게 되었다고 하면서 조용히 뉘우쳤다고 한다. 2018년 지라르 전기문​2)이 출간되었는데, 그 전기문에 대한 서평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지라르는 터무니없는 비이성주의를 화려하게 드높이는 데리다, 푸코, 폴 드만(Paul DeMan)과 함께 그가 이후에 "프랑스 역병"(the French plague)라고 부른 것을 미국에 소개한 역할에 대해서 조용히 뉘우쳤다. 지라르 자신의 노력들은 점차적으로 인류학과 종교적 연구로 방향을 잡았다. 루소, 낭만적 원시주의, 니체 그리고 프랑스 미학주의, 악마주의(diabolism)("악의 꽃), 그리고 미학적 실존주의 - 사드, 보들레르, 지드, 샤르트르, 장 주네, 푸코, 데리다, 폴 드만, 바타유 - 는 잔여분으로서 남아있는 기독교적이고 플라톤적이고 아놀드적인(Arnoldian) 자유적-휴머니즘적인 전통을 익사시켜버렸다.​3)


    지라르가 주도적으로 조직한 1966년의 이 국제학술대회는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학술대회였는데, 자크 라캉, 루시앙 골드만, 롤랑 바르트, 그리고 결과적으로 니체적 허무주의자들 중 가장 명민한 자크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의 회의적인 유명인사 지식인들이 초대되었다. 자크 데리다는 1966아직 무명이었는데, 애매주의자(obscurantist) 데리다는 이 학술대회를 통해서 명성을 얻었고, 그 다음에 3권에 책을 출간하고 미국에 강연을 다녔다. 데리다와 좌파 니체주의인 그의 해체주의는 미국을 폭풍처럼 강타했는데, 이것이 미국 인문학부의 수강신청과 그 강의내용 모두에서의 난해성(unintelligibility), 하락 그리고 몰락에 있어서의 주요한 스토리가 된다.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이 가져온 장기간의 효과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의 하락하는 수강신청률에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2014년에는 인문학부 수강신청률이 20%에서 7%으로 하락했다. 문화전통들과 권력구조들에 대한 도덕주의적인 네오맑시즘적인 분석과 연합된 상대주의적이면서도 좌파적, 친프랑스적 니체주의가 -  이것은 미친 조합이다 ! -서구 대학 캠퍼스가 숨쉬고 있는 공기가 되어버렸다.​4)


    뉘우치는 지라르는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폭주에 저항하고 또한 비판했는데, 처음에는 스탕달, 플로베르, 푸르스트로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더 오래되고 위대한 문학적 전통, 특히 단테와 도스도예프스키와 유대-기독교 성서에 근거해서 이 저항과 비판을 시도했다. 베르다예프, 솔제니친 그리고 다른 반공산주의적 반체제 인사들과 같은 도스도예프스키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독자들과 같이, 지라르도 도스도예프스키를 가장 위대한 사회-심리학적 분석가로 보게 되었다. 또한 지라르는 도스도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이기주의와 탐욕이라는 원죄로 구성되고 또 그것을 보여주는 부당한 자기애(amour propre)와 현대적 삶의 안절부절한 혁명적 르상티망들에 대한 해독제로 보게 되었다.

     

     

     성혁명, 성정치 그리고 성유토피아(빌헬름 라이히와 마르쿠제)

    문화맑시즘은 한마디로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이론적으로 융합된 프로이트맑시즘(Freudomarxismus)이다. 독일어 위키피디어에는 프로이트맑시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프로이트맑시즘은 유럽의 신좌파(68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고도의 노동성취를 위해서 성을 억압하게 되는데, 오스트리아 출신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에 의하면 이는 군중노이로제를 일으킨다. 그렇기에 새로운 인류의 해방과 자율성을 위해서는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성을 자유롭게 독립시켜야 한다고 라이히는 주장한다. 프로이트맑시즘의 기초를 수립한 학자는 빌헬름 라이히다. 국내에는 라이히의 성혁명과 성정치에 대한 다수의 책이 이미 번역되어 있다.  그의 프로이트맑시즘은 독일 프랑크푸루트 학파에 속하는 에릭 프롬(Erich Fromm)에 의해서 수용되었고, 무엇보다도 마틴 하이데거에 의해 영감받은 마르쿠제(Herbert Marcuse)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 프로이트맑시즘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맑시즘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포스트모던 급진페미니즘 모두에 자리잡고 있다. 우선 성혁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빌헬름 라이히, 그리고 빌헬름 라이히의 성혁명 이론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럽 68 학생 문화혁명의 멘토이자 구루였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마르쿠제(Herbert Marcuse)를 논의하고 그 이후에 퀴어 이론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여제사장으로 평가받는 주디스 버틀러와 프로이트맑시즘 전통에 서 있는 포스트모던적 급진페미니즘 이론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21세기 유럽의 사회주의자들도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유럽 68 세대들이 시도했던 성혁명은 성공적으로 일어났으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68 세대들의 성혁명과 성정치 운동은 21세기 퀴어 이론,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동성애 담론 등으로 이어진다. 정치경제 영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회주의자들 자신들도 보지만,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사회주의 혁명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혁명 운동과 이것과 관련된 성정치 운동이다. 문화맑시즘의 성혁명은 성공적으로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을 글로벌하게 행사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환경문제, 다문화정책과 함께 이러한 성혁명적이고 성해방적인 성정치 운동과 젠더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성혁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섹슈얼리티()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과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이 융합되어서 탄생한 개념이다. 『성혁명』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유럽 68 문화혁명 세대들의 성혁명과 성정치 운동의 기원이 된 오스트리아 출신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프로이트의 제자였지만, 이후 정신분석학회에서 추방되었는데, 그 이유는 라이히가 정신분석학회에 공산주의 사상을 도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소아성애 운동의 근거: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적 성욕망

     빌헬름 라이히의 프로이트맑시즘은 이후 유럽 68 학생 문화혁명때 깊게 수용되었다. 그의 책은 68 운동 당시 광범위하게 읽혀졌다. 특히 라이히는 아이들의 성(Kindliche Sexualität) 은 해방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들의 성억압은 파시즘적인 시스템을 생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유럽 68 운동권에 의해서 수용되어졌고, 이후 독일연방공화국(BRD)의 학교 성교육 과정에 영향을 주었으며,​5) 여러 다른 학문분야에서 하나의 신앙고백(Credo)처럼 되었다. 이러한 라이히의 이론에 기초한 독일 조기성교육에는 소아성애적인 요구(pädophiler Forderungen)가 포함되어 있어 최근 독일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6) 빌헬름 라이히는 반권위주의적 교육을 위해서 세대적인 가정질서의 해체(Auflösung generationaler Familienordnung)를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미국의 여성운동과 젠더정치적 개념들에 깊은 영향을 준 프로이트맑시즘적인 페미니즘(freudomarxistischen Feminismus)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독일 프랑크푸르루트 학파의 비판이론도 문화맑시즘인데, 특히 프로이트맑시즘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류 문화는 충동을 억압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성립된다는 문화철학적 입장을 주장한다. 문화적인 성취란 성에너지를 승화한 결과이며, 그에게 있어서는 성억압 내지는 성억제는 모든 문화발전의 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빌헬름 라이히의 성혁명 개념은 성억압이 전혀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면서도 고도의 문화를 발전시킨 사회가 존재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성은 사춘기 이후의 성이지만, 빌헬름 라이히는 사춘기 이전의 어린 아이들의 성해방을 주장하기에, 소아성애의 문제가 항상 등장한다. 이후에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소아성애에 대한 독일 녹색당의 탈범죄화와 법제화 시도 그리고 소아성애 문제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정치적 스캔들 등을 소개할 것인데, 이러한 소아성애의 문제는 빌헬름 라이히의 이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소아성애의 이론적 근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초석이자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이다. 어린 아이 오이디푸스의 어머니를 향한 근친상간적 성욕망을 긍정하자는 입장에서 소아성애 이론이 나온 것인데, 이는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작품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현대적 오독과 오해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성기 중심의 섹슈얼리티에서 근대성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보았다. 빌헬름 라이히는 청소년의 성관계를 격려해야 하고, 어린이조차 성관계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서 성욕을 억제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어려서부터 집의 하녀와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졌다고 한다. 또한 그의 어머니가 가정교사와 불륜을 범한 이후, 아버지는 큰 상처와 분노를 경험했고, 결국 어머니는 자살하고, 이후 아버지도 죽게 되었다.

     

    "빌헬름 라이히와 마르쿠제와 같은 혁명적 좌파 프로이트 추종자들은" "통음난무(Orgie)를 성유토피아(Sexualutopie)로 설파하기도 했다."​7)  68 학생운동의 구루였던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8)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성유토피아적 해석인데, 그의 책은 게이 운동과 성정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르쿠제는 이 책에서 성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유토피아적인 사회에 대한 개념을 하나의 조직적인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성유토피아를 주장하는 빌헬름 라이히와 마르쿠제의 책들은 유럽 68 문화혁명 운동 당시에 유행한 히피운동, 자유로운 성 운동에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이러한 성유토피아론은 공산주의적인 가정해체 이론과 관련되어 있었다. 당시 자유로운 성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젊은이들은 공산주의적 코뮌(Kommune)에서 실제로 자유연애주의, 폴리아모리(polyamorie, 다자성애) 등의 삶을 추구했다.


    프로이트와는 달리 사춘기 이전의 청소년의 성욕망과 소아들의 성욕망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적 근거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초석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오이디푸스)의 어머니를 향한 근친상간의 성욕망에 대한 오독이다. 프로이트 자신 뿐 아니라, 빌헬름 라이히, 주디스 버틀러, 프로이트맑시즘적인 페미니즘 학자들이 점차 아이들의 성욕망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은 희생염소(scapegoat)  혹은 파르마코스(인간 희생양) 역할을 하는 오이디푸스의 하마르티아(비극적 결함, 죄악)인 근친상간과 부친살해를 억압받는 성욕망으로 오독해서 나온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치명적인 결함과 죄악(하마르티아)인 근친상간적인 성욕망은 소아성애의 이론적 기초가 될 수 없다. 근친상간적 성욕망은 희생염소 역할을 하는 오이디푸스에 대한 그리스 폴리스의 마녀사냥이다.

     

    오이디푸스의 하마르티아인 근친상간과 부친살해는 빨갱이, 친일파와 같은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공격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희생염소 역할을 하는 오이디푸스에 대한 사회적 비난형태일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어머니와 근친상간하고 아버지를 죽인 자일 것이다. 그래서 오이디푸스도 죽어서라도 근친상간한 어머니와 자신이 죽인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서 그리고 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저주하면서 자신의 눈을 찌른 것이다. 성욕망, 성해방, 성정치, 동성애, 퀴어이론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많은 이론가들은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프로이트맑시즘적인 오독으로 인해 사실상 소아성애를 긍정하고 근친상간 금기를 폐지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주디스 버틀러와 미셀 푸코도 해당되는데, 이후 다룰 것이다.  

     

     

    소아성애적 반파시즘(68 학생운동, 독일 녹색당과 좌파)

     


     녹색당. 과거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독일 슈피겔 2013 5 13일 기사는 소아성애 지지자들의 영향력이 신생 녹색당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더 강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녹색당의 책임은 아동들과의 성관계를 인간적인 성욕망이 표출되는 정상적인 유형으로 인식되는 그러한 분위기가 (녹색당) 안에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고 이 기사는 분석한다


    또한 소아성애 운동과 독일 녹색당과의 깊은 연관성은 유럽 68운동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녹색당은 68 운동의 산물인데, 그 운동은 사회를 성적인 억압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압착되고 자유스럽지 못한 인간은 모든 악의 원으로 간주되었다. 1980년에 녹색당은 창당되었는데 소아성애 지지자들은 창당 때부터 참여했었고, 그들은 물론 사건의 중심에는 아니었지만 항상 주변에 존재했다. 녹색당 창당 첫째 날부터 평화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반핵주의자들과 함께 도시의 인디언들(Stadtindiane)이 등장해서, 성인들과 소아들 사이의 모든 부드러운 성적인 관계들에 대한 합법화를 요구했다


    2013년에 녹색당 대표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보호가 녹색당의 중요한 관심이라고 주장했지만, 소아성애 지지자들은 여전히 녹색당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녹색당이 중장기적으로 성소수자들을 위해 투쟁해 줄 유일한 정당으로 보고 있다. 즉 소아성애 합법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자신들도 성소수자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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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권 박사
    르네 지라르 이론에 대한 학제적 연구 중심지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 조직신학부 기독교 사회론(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분야에서 신학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인스부르크 대학교 인문학부의 박사 후기 연구자(postdoctoral research fellow) 과정에서 학제적 연구프로젝트 『세계질서-폭력-종교』 (Weltordnung-Gewalt-Religion), 『정치-종교-예술:갈등과 커뮤니케이션』에서 연구하고 귀국했다. 지라르를 직접 2번 만나 학문적 대화를 나누었다. 한동대학교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초빙교수로 가르쳤다. 국제 지라르 학회인 ‘폭력과 종교에 관한 콜로키움’(Colloquium on Violence and Religion)의 정회원으로서 르네 지라르와 불교 연구에 있어서 국제적 인지도를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800여개의 외국논문이 정일권 박사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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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chael Kirwan, Discovering Girard (Cambridge, MA: Cowley Publications, 2005), 10

    2) Cynthia L. Haven, Evolution of Desire: A Life of René Girard (East Lansing, MI: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18).

    3) M. D. Aeschliman, Mimicry, Mania, and Memory: René Girard Remembered. Nationalreview. 2018 10 21일 기사.ttps://www.nationalreview.com/2018/10/book-review-evolution-of-desire-rene-girard-remembered/

    4)  M. D. Aeschliman, Mimicry, Mania, and Memory: René Girard Remembered.

    5)  Christin Sager: Das aufgeklärte Kind. Zur Geschichte der bundesrepublikanischen Sexualaufklärung (1950-2010). Bielefeld 2015, S. 129 ff.

    6) Vgl. Günther Deegener (2016): Bewertung pädophiler Forderungen im Deutschen Kinderschutzbund (archivierte Version auf Docplayer), S. 3 ff.

    7) Martin Lindner, Leben in der Krise: Zeitromane der neuen Sachlichkeit und die intellektuelle Mentalität der klassischen Moderne (Stuttgart, 1994), 28.

    8) Herbert Marcuswe,. Eros and Civilization: A Philosophical Inquiry into Freud (Boston: Beacon Press. 1974).


     

  • 60

    들어가면서
    아래 그림책은 Gayle Pitman의 “This Day in June”이라는 5세용 그림책 중 일부인데 게이 퍼레이드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판된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LGBT)의 경험을 훌륭히 전달한 책에게 수여하는 상인 Stonewall Book Award에서 2015년 최고의 어린이와 청소년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래는 2017년 공영방송 EBS가 제작해서  하루 방문자만 2만명이 넘는 인기 초등학생용 온라인 학습 콘텐츠인 스쿨잼 블로그우리의 친구 성소수자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카드뉴스 내용의 일부분이다. 성전환 수술을 미화시키고 동성애도 이성애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래는 2012년도 교학사에서 출판된 『생활과 윤리』라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이다. 고등학교 사회탐구 영역에서 '생활과 윤리' 교과는 수능 시험 문제가 쉽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교과인데 91~93쪽에서 성적 소수자 문제를 다루면서 친동성애자들의 동성애 옹호 주장을 일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왜곡, 미화하며 조장할 의도로 보일 만큼 극도로 편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호기심 많은 청소년을 동성애자의 세계에 노출시키며 동성애 확산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좀 더 나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선행학습 시키고 학원 보내는 데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자녀들은 비도덕적인 성교육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다. 버젓이 공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들이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을 세뇌시키며 동성애 확산을 초래하고 있다. 

     

    젠더 기반 교육은 엄청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성교육을 지원하는 성인지 관련 예산으로 2020년에 317천억원이 책정되어 있는데 일자리 예산으로 25조가 잡혀있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이 예산을 활용하여 각종 여성단체들은 남녀 이외에도 다양한 성이 존재하며 자신의 성을 고를 수 있다고 교육하고 있으며 성 도덕이 배제된 무분별한 성행위를 조장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예산정책과 성교육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잘못된 가치관과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행위들이 자연스러운 것인 것처럼 서서히 세뇌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과 예산 정책 뒤에는 현재 사회를 혼란 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당혹게 하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젠더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이론들은 생각보다 그 뿌리가 매우 깊고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의 가치관에 깊숙이 스며들어왔다. 그래서 본 논고는 3회에 걸쳐 젠더 이데올로기의 뿌리와 이론적 흐름을 짚어보고 이와 관련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회에서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맑시즘과 그 후속주자 네오 맑시즘에 대해 살펴보고, 2회에서는 젠더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후기구조주의를 다루며 마지막 회에서는 젠더 이론의 전초전 역할을 한 페미니즘과 함께 9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젠더 이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맑시즘(마르크스주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상적 뿌리를 맑시즘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유럽 서구사회는 산업화가 한참 진행 중이었고 이로 인해 자본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빈부의 격차가 큰 문제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사회적인 현상을 크게 문제 삼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칼 마르크스(1818-1883)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내의 계급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는데 이 충돌은 노동자 계급(프롤레타리아)의 사회화된 생산의 잉여 생산물을 소수의 자본가 계급(부르주아지)이 착취하여 사적으로 소유함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두가 함께 생산하고 공유하는 절대적인 평등사회를 꿈꾸었는데 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통해 이러한 불합리한 자본주의 구조를 전복시켜 모든 생산의 결과물을 동등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럴듯한 마르스크의 주장에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이 계급적 갈등의 해결책인 노동자계급의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혁명의 폭력성이 20세기에 들어와 러시아, 중국, 북한,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의 여러 국가에 상상 이상의 고통과 파멸을 초래했는지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또 다른 위험성은 가족과 기독교의 붕괴에 대한 촉구이다. 이 두 요소는 자본주의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며 사회 계급투쟁에 방해되기 때문에 반드시 붕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가족은 자본주의 계급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되기 위해서는 가족이 붕괴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종교는인민의 아편”(“헤겔의 법철학 강요”)과 같아서 계급 불균형 사회가 주는 고통을 잠시 없애주어 현실에 안주하여 투쟁의지를 포기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러한 불균형한 사회 제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계급혁명이 성공하려면 서구사회의 가치관의 근간을 제공하는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마르크스는 인류를 진보시킨다는 명목으로 인류를 지탱해준 기본 틀을 붕괴시키고자 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엄청난 죽음과 희생, 고통과 좌절을 초래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철학사상들과는 달리 단지 사유로 끝나지 않고 실행에 옮겨졌으며 그 결과 20세기 초반에 러시아, 중국과 동부유럽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고 이로 인해 맑시즘은 하향세를 타며 와해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억압적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의 씨앗이 남은 상태에서 마르크스의 정신은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네오 맑시즘이라고 부른다.

     


    네오 맑시즘(문화 맑시즘)과 후기구조주의

    문화마르크시즘이라고도 불리는 네오 마르크시즘은 사회의 불균형한 구조를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불균형에 주목했다. 네오 마르크시즘은 사회구조 역시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대립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투쟁을 통해 사회구조적 변화를 꾀했다면 네오 맑시스트들은 장기적으로 기존의 전통 가치관에 대항하는 세계관과 신념들을 어느 한 지배집단이 문화 전반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뇌시킴으로써 천천히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꾀했다​1)그런 의미에서 문화 맑시즘이라고도 불린다.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네오맑시즘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특히 주목할만한 이론이 바로 후기구조주의다. 후기구조주의는 네오맑시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맑시즘의 정신을 이어받아 같은 뿌리를 나누며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면서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반 순수 언어학을 기반으로 한 구조주의에서 파생된 후기구조주의는 언어의 원리를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즉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내재된 규칙과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인간의 사고체계를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에서 시작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 체계는 자의적이고, 관계적이며,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언어구조를 기반으로 형성되며 이로 인해 궁극적인 의미, 혹은 중심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즉 진리는 변화하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구사회가 그렇게 믿고 추구하던 절대적인 진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한 언어의 원리와 구조 중심적인 사고로 인하여 언어를 사용하고 전달하는 인간은 단지 언어가 발화될 수 있는 매개체일 뿐 의미 생성의 주체가 아니다. 이런 후기구조주의의 절대적 의미의 부재와 주체로서의 인간의 부재는 전통 서구의 철학사상의 근간을 뒤엎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는데 6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면서 70년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90년대를 기점으로 젠더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음 논고에서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후기구조주의 이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후기구조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역시 젠더 이론의 전초전 역할을 한 페미니즘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숙경 교수
    Texas A&M 영문학 석,박사 졸업. 침례신학대학원 실용영어학과 교수/ 학과장. 바른인권여성연합 연구소 세움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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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한 지배집단이 다른 집단을 상대로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행사하는 영향력을 헤게모니(hegemony) 라고 한다. 이 개념은 이탈리아 맑시스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에 의해서 소개되었는데 그의 저서 『옥중수고』(Selection from the Prison Notebook)에 의하면 지배계급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 종교, 사회기관, 미디어 등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피지배계급을 이념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 59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적대적인 시대 조류와 그 폐해  

    지난 200년 동안 서구세계의 영적·정신적 기류는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흘러왔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많은 사상가와 지성인들(장 자크 루소, 어거스트 콩트, 샤를 푸리에,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빌헬름 라이히, 알프레드 킨제이, 존 머니 등)은 전통적 결혼과 자녀 양육의 요람인 가정을 해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많은 활동가들 또한 합세하여 성적인 억압을 제거하고 부모와 자녀관계를 해체시키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특별히 20세기의 모든 가정해체 운동은 맑시즘(Marxism)에 영적·정신적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해체 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은 서로 다른 동기와 이해관계를 가졌지만,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성규범의 해체-가정의 해체-기독교의 해체’였다. 종국적으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독교 교리를 파괴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는데,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기독교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가정해체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성규범의 해체-가정의 해체-기독교의 해체’를 정당화하는 이론인 네오 맑시즘(Neo-Marxism)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네오 맑시즘은 유대교-기독교 문화를 무너뜨리는 ‘조용한 혁명’으로 전략을 수정한 맑시즘의 새로운 분파, 문화 맑시즘(cultural Marxism) 으로서,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가 제시한 이 혁명의 아젠다에서 가족해체는 수위를 차지한다​1).특별히 좌파들의 지적인 무장을 위한 핵심 브레인인 ‘프랑크푸르트학파’(the Frankfurt school)가 지성인들을 사로잡으면서 전통적 가정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사상적 체계가 구축되었다.


    마침내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68혁명’은 200년간의 반(反)체제-반(反)문화-반(反)기독교 운동을 하나로 결집시킴으로써 가정파괴를 강행할 거센 시대조류를 만들어냈다. 서구세계는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을 감행한 68혁명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양분될 만큼 문명사적 대전환을 겪었는데, 그 중심축에 가정해체가 꽈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68혁명으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패륜적 학문을 발전시킨 유명한 학자들(자크 라캉,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등)은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의 파괴를 한 목소리로 강변하였다.


     

    가정을 적대시하는 이들의 무책임하고 불의한 행보로 인해 오늘날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나날이 영적·정신적 혼란에 빠져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구심점을 잃고 불안해하고, 우울증을 위시한 각종 정신질환으로 인해 삶의 환경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 시대가 안녕(安寧)하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우리는 가정이 파탄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문명 자체를 지키는 막중한 일인 것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 뼈아프게 겪었던 급진적 페미니즘의 본산지 미국에서는 ‘가정으로 돌아가자.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조용히 일고 있다. 그것도 한때 급진적 페미니즘을 추종했던 여성들이 ‘가정으로의 복귀(復歸)’를 말하면서, 이것을 페미니즘의 후퇴나 역주행이 아닌 페미니즘의 연장이자 새 조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에밀리 맷차(E. Matschar)는 ‘새로운 가정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이 미국의 문화적·정치적 근본배경을 움직일 수 있는 대변혁이 될 거라고 예견하고 있다​2). 이를 통해 우리는 극에 달한 영적·정신적 불안과 우울, 사회적·정치적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가정의 부름에 이끌린바 될 거라고 예단할 수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야기하는 가정 해체의 위험성 

    인류역사에서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가장 적대적인 시대사조는 명백히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이다. 맑시즘을 근간으로 세력을 확장한 급진적 페미니즘과 성정치-성혁명 이론이 결탁하여 발흥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파급력이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가정해체를 야기하는 위험한 시대사조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죽음 연구에 천착하면서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필자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서 특히 주목한 것은,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와 가정해체 사이의 긴밀한 상관성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영향력을 확대함으로 인해 장구한 인류 사회의 관습과 규범이 지난 50년 사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데, 특히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젠더 이데올로기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 대신 무수히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LGBTQIA)의 폴리 아모리(polyamory, 복수연애)를 적극 옹호함으로써 가정해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특히 ‘인권’ 혹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레즈비언적(lesbian)·게이적(gay)·바이섹슈얼적(bisexual)·트랜스젠더적(transgender)·인터섹슈얼적(intersexual)··· 파트너십, 그 외 온갖 괴이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일부일처제 결혼에 대한 대안적 결합으로 미화하는 패륜적 성혁명을 강행하는데, 이 성혁명의 핵심적 요체는 명백히 성규범의 철폐를 통한 가정해체이다.


    21세기 들어와 가열차게 전개되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는 남녀 고유의 성정체성을 해체시킬 뿐만 아니라, 가정해체를 주요 목표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젠더 주류화는 ‘성차별 철폐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젠더 주류화가 겨냥하는 ‘성차별 철폐’는 종국적으로 차별의 근원이 되는 남녀 성정체성의 해체, 곧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방법은 한계가 있으니 아예 성별을 해체시켜 버리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결혼 및 가족제도가 왜곡된 성역할과 이에 따른 성적 위계질서를 파생시키기 때문에 이 또한 해체시켜 버리자는 것이 젠더 주류화의 숨은 전략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획책하는 가정해체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실천 매뉴얼인 ‘욕야카르타 원칙’(the Yogyakarta Principles)에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욕야카르타 제24원칙은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에 상관없이 가족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 … 어떤 가족도 구성원의 성적 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함으로써 전통적 결혼을 젠더들 간의 자의적 관계로 대체시키고 있다.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이 욕야카르타 원칙의 핵심 용어인데, 여기서 우리는 이성애(異性愛)에 근거한 전통적 가족의 기준, 곧 생물학적 자녀를 출산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혼이라는 기준을 제거하는 대신 유동적인 젠더를 가진 모든 부류의 사람들(남녀 가리지 않고) 간의 결합을 가족이라고 새롭게 규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3).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욕야카르타 원칙이 동성애에 기반하여 결혼제도를 완전히 다르게 정의한 사실이다. 동성애 옹호세력이 동성 파트너십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혼과 동등하게 만드는 작업은 인류가 수천 년간 지켜온 결혼과 가족의 유산에 대한 역사적 파괴, 법적 제도로서의 결혼과 가족의 개념에 대한 엄청난 상처라 아니할 수 없다. 전 세계 인구의 0.1%도 안 되는 사람들만이 동성 파트너와의 관계를 합법화(동성결혼)하는 데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데, 그렇다면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이 보편적 결혼의 의미를 왜곡시키면서까지 동성결혼을 강행하는 저의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더욱 당혹케 하는 것은, 유력한 국제기구들이 불과 수십 년 사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편승함으로써 가정해체에 앞장서는 현실이다. 사실 1948년 발표된 유엔(UN)의 세계인권선언문 제16조에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기초적 단위로서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듯이, 그 동안 유엔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적 신실함이 바탕이 되는 일부일처제가 가족을 이루는 근간으로서 사회와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유엔과 산하기관들은 세계인권선언문이 선포했던 기본 정신을 포기함으로써, 남녀의 성정체성을 해체시키고 결혼 및 가족질서를 파괴하며 성도덕을 없애버리며 낙태를 인권이라고 주장하는 중심지가 되어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은 전 세계인들의 희망의 등불이었지만, 현재는 패륜적 성혁명의 선봉에 서 있다​4).


    평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망으로 탄생한 유럽연합(EU) 역시 50년이 지난 작금에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권력기구로 변질되었다. 1950년 발표된 ‘유럽인권조약’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혼을 보호하면서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의 남녀는 각 국가의 법에 따라 결혼하고 가족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지만, 2000년 유럽연합은 ‘유럽연합 기본권헌장’에서 결혼제도를 거론하면서 더 이상 남녀를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결혼과 가족은 남녀관계와는 무관한 제도로 인식되는데, 이것은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허용 가능성의 포문을 여는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은 회원국이 되기 원하는 유럽 국가들에게 젠더 평등(=성평등) 방안, 특히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젠더 주류화 관련 조치들을 채택할 것과 아울러 혐오범죄법 및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5).


    유력한 국제기구들이 결혼과 가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상황 속에서 ‘어머니’라는 숭고한 단어가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서구세계에서 모욕당하고 있다. 일례로 스위스 사회주의자이자 유럽각료이사회 구성원인 도리스 스텀프(D. Stump)는 더 이상 여성을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인 ‘어머니’로 묘사하지 말 것을 요구한 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가보건서비스는 동성혼 부모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엄마’와 ‘아빠’라는 호칭을 금지하였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리턴(H. Clinton)도 ‘어머니와 아버지’ 대신 ‘부모1과 부모2’를 사용하도록 시도했었지만, 엄청난 비판에 봉착하자 ‘어머니 혹은 부모1’, ‘아버지 혹은 부모2’라고 문서 양식에 기재하는 선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다. 모든 인류가 생명을 빚지는 존재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그것이 동성애자들에게 차별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로 언어 청소를 당하는 현실에 깊은 우려와 의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타한 서구세계에서 ‘결혼’과 ‘가족’이라는 단어는 공적으로 인정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실하고 지속적인 결합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강탈당한 지 오래다. 결혼을 단지 육체적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계약관계(때로는 서로의 혼외정사도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로 간주하는 상황이 결혼의 안정성을 극도로 약화시킴으로써 이혼율도 급증한 지 오래다. 오늘날엔 왕자가 왕자와 결혼하는 유치원의 그림책으로부터 덕지덕지 짜깁기해 놓은 듯한 모습의 가족, 성소수자들의 무지개 가족까지 포괄한 넓은 범위의 가족들이 모두 동일하다고 거론된다. 심지어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일부일처제를 타파하기 위해 다수의 남녀들이 동거하는 폴리 아모리, 다(多)애인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정한 가정에서 계속 바뀌는 다수의 연인들을 편력하면서 상처투성이로 망가져가는 부모들을 바라보는 아이들 또한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 모른다.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세대 전승의 중요성 

    젠더 이데올로기가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필자가 건강한 가정공동체 구축과 세대 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와 문명 자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랜 연구를 통해 뼈저리게 절감했기 때문이다. 즉 가정은 단순히 자연적·사회적 구성단위가 아니라, 남녀 간의 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끊으려야 끊을 수 없게 이어주는 생명줄, 인류가 후손에게 대대로 전수해주고 길이 보존해야 할 인류의 보고(寶庫)이다. 이러한 가정은 서로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결실인 자녀를 낳기 원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일부일처제에 기초해야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는데, 그 연유는 이 안에서 인간의 성(性)이 거룩해지고 보호받고 축복받을 수 있음은 물론 다음세대가 가장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세대는 갈등이 적은 결혼생활을 하는 생물학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가장 잘 성장함으로써, 건강하고 안정된 가정은 건전한 사회인이자 신실한 신앙인을 배출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청소년서비스, 사회복지사, 정신과의사, 심리치료사, 교정복지시설, 종교기관 등이 더 많은 사후처리를 떠맡아야 하지만, 삶의 영역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갈 수밖에 없다. 가정은 사회공동체의 기본 단위이므로,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건강한 가족공동체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와 국가공동체의 안녕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건강한 가정을 구축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젠더 이데올로기가 감행하는 패륜적 성혁명의 거센 파고 앞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지구촌 사람들의 심령이 황폐화되는 위기에 직면하여, 한국교회는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인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이 시대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행하는 성혁명의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에 대항하여 가정 주류화(family mainstreaming)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특별히 필자는 존엄한 삶·존엄한 죽음·존엄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에 몰두하면서 건강한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가정적 유대관계는 삶의 질은 물론 죽음의 질도 좌우하는 중요 조건, 곧 삶의 존엄·죽음의 존엄·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라고 진단한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의 심각한 현안 중에서 긴급히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사회문제인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방 기제도 건강한 가정이다. 실제로 가족의 정서적·사회적 지지는 자살 시도자의 행동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많은 연구자들은 보고한다​6).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는 가족과 갈등이 많은 반면,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받는 사람은 자살행동이 매우 낮아진다. 그러므로 가족의 따뜻한 후원과 진심 어린 격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형제자매의 존재는 자살의 훌륭한 방어요인이 될 수 있다​7).


    한편 가정공동체가 무너져서 가족의 따뜻한 지원을 받지 못해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 및 무연사 (無緣死)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을 확연히 인식할 수 있다. 곁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다가 혼자 맞이하는 죽음, 자살이나 지병 등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후 시간이 한참 지나 부패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고독사’, 고독사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홀로 죽어 시신을 거두어줄 사람조차 없는 ‘무연사‘, 이것은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관계망이 해체된 사회에서 연(緣)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겪는 참담한 사회현상이다​8). 고독사가 전통적 가족관계의 붕괴로 말미암은 가정해체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강한 가족관계는 서로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기 때문에 개개인과 사회구성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최대 희생양인 남성 성소수자들의 고독사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이혼 남성의 자살률은 고령층으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고령의 남성 미혼자의 자살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심각하다. 이것은 배우자와의 충실한 가정생활이 자살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런데 필자가 자살과 고독사를 연구한 결과, 상당수 고독사 희생자가 자살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양자가 발생하는 원인이 중첩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필자가 진단하는 자살과 고독사의 최대 위험군은 일정한 직업 없이 지병을 앓으면서 혼자 사는 중장년 이혼 남성 혹은 독신 남성이다​9). 그런데 이미 알려진 것처럼 남성 동성애자들은 주로 40세 이전엔 다수의 파트너들과 복수연애하면서 성적으로 방종하는 삶을 살다가, 40·50대 이후엔 그로 말미암은 각종 신체적 질병으로 인해 파트너들에게서 버림받고 실직하고 파탄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필자는 향후 상당수 남성 동성애자들이 병든 몸으로 외롭게 살아가다가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살과 고독사의 직격탄을 맞게 될 거라고 우려한다. 


    건강한 가정공동체의 구축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사명을 위해서도 중차대한 일이다. 특히 “젊은이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격언이 있는데, 이것은 패륜적 성혁명이 횡행하는 영적·사상적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지를 결정하는 말이다. ‘전통’(tradition)이란 단어가 ‘전수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트라데레’(tradere)에서 유래하듯이, 만일 어떤 세대가 그 조상들로부터 인간이 반드시 지녀야 할 미덕들을 전수받지 못하면, 그들 역시 다음세대에 이를 전수하지 못할 것이다​10).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이 한 세대를 거쳐 다음세대까지 전승되지 못하면, 다음세대는 기독교 가치체계를 전수받지 못할 것이며 기독교 전통은 종언을 고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가 문을 닫고 다음세대가 급감하는 상황은 우리를 더욱 근심케 한다​11).  진정 건강한 가족이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정망이라면, 가장 중요한 영적 안전망은 바로 신앙일진대, 기독교 신앙이 붕괴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인류의 대재앙이 될 것이다. 
     


     패륜적 성혁명 시대 속에서 사수해야 할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

    고대 이교도 세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이스라엘 근동에는 절제된 성규범이 존재하지 않아서 이방 족속들은 동성애(homosex)와 근친상간(incest), 수간(zoophilia)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했지만, 이 음란하고 패역한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선민(選民)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은 이전엔 전례가 없는 거룩한 성혁명이었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통해 상호보완적인 성의 경계를 넘고, 근친상간을 통해 혈연간의 경계를 넘고, 동물과의 성관계를 통해 생물 종간의 경계를 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셨다​12). 특별히 인간의 성행위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안에서 거룩해지고 보호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가정의 기초가 올바로 세워지고 다음세대(기독교 신앙을 후대에 전수할 미래세대)가 가장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의 중요성을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왔는데, 가정이야말로 종족이 멸절 당하는 온갖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원초적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유대 민족의 삶은 물론 유대 문명의 기반은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라고 할 수 있다​13). 사실상 기독교가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가정이 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다음세대에 기독교 신앙과 가치체계를 전수하는 일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만큼 우리 세대의 가장 중차대한 사명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적 과제가 막중한데, 역사상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저항은 항상 기독교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시대사조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세상을 부패시키지만,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그리스도인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정결해지게 된다. 패역한 시대사조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강하게 사로잡을수록, 그리스도인은 변함없는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야 할 책무가 있다​14). 그러므로 음란한 성혁명이 횡행하는 21세기에 그리스도인은 인류문명의 무모한 도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인류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윤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독교 공동체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젠더 이데올로기가 성도덕과 가정을 총공격하는 상황 속에서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를 지켜내야 한다.


    동성애와 관련하여 다른 종교들이 일체 함구하면서 불의한 타협의 길을 걸어가는 상황 속에서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반(反)인권적 폐해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보건 위생적 문제(‘한국 HIV/AIDS 코호트 연구팀’이 2006~2018년까지 에이즈 감염인을 추적 조사한 결과, 전 세계적으로 신규 감염이 감소하는 데 반해, 유독 우리나라는 젊은층에서 급증하는데, 주된 감염 경로로 71.5%가 동성 및 양성 간 성접촉을 지목​15))를 고발함으로 반(反)동성애를 표명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세력의 연합, 일명 ‘악의 연합’이 이루어짐으로써 기독교를 핍박하는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위중한 시대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의에 살고 의에 죽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일념으로 헌신하는 가운데 여러 전문가와 연합하여 다각도로 치밀한 자세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드시 막아내야 할 것이다.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 bingen)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the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 공동체 <21세기교회와 신학 포럼>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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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탈리아 맑시스트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가 주창한 조용한 혁명 아젠다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지속적 사회변화로 혼란을 조성한다. 2. 학교와 선생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3. 가족해체를 추진한다. 4. 어린이들에게 성교육 및 동성애 교육을 실시한다. 5. 교회를 해체한다. 6. 대량 이주와 이민으로 민족 정체성을 파괴한다. 7. 인종 차별을 범죄로 규정한다. 8.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다. 9. 복지정책을 강화하여 국가나 기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한다. 10. 언론을 조종하고 대중 매체의 수준을 저하시킨다. 11. 과도한 음주를 홍보한다.

    2) E. Matchar, 『하우스 와이프 2.0(서울: 미메시스, 2015), 10-22.

    3) Cf. G. Kuby/정소영 옮김, 『글로벌 성혁명』(서울: 밝은 생각, 2018), 103-128.

    4) Cf. 위의 책, 81-102

    5) Cf. 위의 책, 129-146.

    6) 곽혜원, 『자살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서울: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2011), 71-80.

    7) E. Durkheim/황보종우 옮김, 『자살론』(서울: , 2011), 238-239, 241, 323-330.

    8) 곽혜원,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347-348.

    9) 위의 책, 376.

    10) G. Kuby/정소영 옮김, 『글로벌 성혁명』(서울: 밝은 생각, 2018), 301-302.

    11) 곽혜원, 한국 교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2종교개혁연구소 엮음, 『제2종교개혁이 필요한 한국교회』(서울: 기독교문사, 2015), 183.

    12)  G. Kuby, 『글로벌 성혁명』, 301-302.

    13) 위의 책, 266.

    14) 위의 책, 265.

    15) 김준명, 한국 HIV/AIDS 코호트 연구, 「성과 생명윤리 포럼 자료집」(2018.10.15.), 27-34


     

  • 58

    2020년 1월 13일 국회에서는 ‘위대한 생명 위대한 가족(Awesome Life Awesome Family)’이라는 주제로 2020 국제 생명주의 성가치관 교육을 위한 포럼이 열렸다. 이 행사에서 탈성전환자 이효진(34세)씨가 마지막 메시지를 맡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효진씨의 영상을 지난해 말 유튜브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귀여운 소녀였던 그녀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야기가 무척 충격적이면서도 감동이었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성호르몬에 의해 뇌 구조와 기능이 그 성(性) 에 맞게 발달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여성성, 남성성이 뇌 구조와 기능에 연결돼 있다고 한다. 즉 생물학적인 성이라는 것은 생각만으로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적인 충격과 상처로 인해서 자신의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과도하게 미워하거나 심지어 혐오하게 되기도 하는데, 어릴 때 받은 상처일수록 적절한 시기에 이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자신의 타고난 성을 거부하려는 심리적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효진씨가 남자가 되려고 하고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 겪은 성적 상처 때문이었다는 것을 탈트랜스젠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크레도 매거진 8호에서는 4년이 넘게 호르몬제를 투여해서 여자에서 남자가 되었다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이효진씨와 만나 그녀의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어린 시절 이야기

    어릴 때 위로 오빠가 있다 보니 약간 남성스러운 성향이 있었어요. 오빠랑 같은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고, 오빠 옷을 살 때 자주 같이 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자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제가 7살 때 성폭행 당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는 정말 귀여운 여자 아이였거든요. 그 때 성폭행 경험이 제 삶을 바꾸게 한 사건이었던 것 같아요.”


    - 묻어두었던 7세 때 성폭행 경험

    성폭행 당했던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마치 콘크리트로 완전히 덮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도 몰랐어요. 그 사건이 나를 이렇게 몰고 갔다는 것을. 어릴 때였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내가 남자였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여자라서 문제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엄마가 치마를 입히면 경기를 일으키듯이 뒤집어지기도 했어요. 결국에는 그 사건으로 남성을 거부하는 혐오증까지 생기게 되고….부모님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혼자 그 상처가 나를 집어 삼키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결국 내가 남자가 되면 여자를 좋아할 수 있으니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어요.”

     

    - 10대 학창 시절

    학창시절 사춘기가 오니 정말 심하게 힘들었어요. 저는 절대 생리가 오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같이 성별이 정해져 있는 곳은 싫어서 일부러 해양소년단에 들어갔는데 해양소년단 수련회에 가서 생리가 터졌고 그 이후 일주일간 제가 완전하게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어요. 또 지금 생각해보면 10대 때는 그럴 수 있는 건데, 중학생 때 남자보다 여자인 친구들이 더 좋고 끌리는 마음이 있었어요. 남성혐오증이 있다 보니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집착하게 되고 마음 안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만성불쾌감 같은 감정이 계속 자리잡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나는 원래 여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해 버리게 된 것이죠. 성 정체성이 자리잡는 그 중요한 시기에 누군가 저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해줬다면 제 인생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어요.”

     

    - 독립 그리고 일과 사랑

    사춘기 시절 제 안에 만성적인 분노가 있다 보니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됐는데 그 분야에 재능이 좀 있었던 듯 하고, 또 어느 한 편으로는 집착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패션 쪽을 전공하게 됐고, 학교 졸업 후 일반적으로 동대문 같은 곳에서 일을 많이 하는데 저는 평소에 좋아하던 디자이너가 어시스턴트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강원도에서 무작정 서울에 와서 인터뷰를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디자이너가 양성애자였던 거예요. 그 때 바로 커밍아웃을 한 것은 아니지만 동질감 같은 것 때문에 마음이 더 편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회사에서 동료를 좋아하게 되면서 커밍아웃을 하게 됐어요. 저는 저의 정체성을 오픈하면 굉장히 시원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더라구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으로. 그러면서 굉장히 우울했어요

     

    - 남자가 되기로

    내가 여자인데 여자를 좋아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부터 여자가 좋기는 했지만 내가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런데 20대 후반 즘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신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과 얘기를 하다가 내가 남자가 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 즈음 엄마에게만 처음 말씀을 드렸는데, 엄마는 굉장히 이성적인 분이셔서 제가 어릴 때부터 평범한 여자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계셨다고 해요. 그렇지만 성 전환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반대하셨어요. 트랜스젠더가 되기로 결정하고 돈을 모아서 진단서를 받아 2014년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때의 진단서를 꺼내 보게 됐는데 성폭력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거에요. 그때까지 그 얘기를 한번도 꺼내본 적이 없어서 상담 받을 때조차도 얘기를 안 한 것이죠. 만약 상담할 때 성폭력 피해사실을 털어놓았다면 저는 호르몬치료를 받지 못했을 거에요. 성폭력으로 인한 상처로 성에 대한 왜곡된 인지가 생기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상담부터 하라고 했을 텐데 그때까지 스스로 철저하게 그 사건을 숨겼기 때문에 남자가 된 것이죠.”

     

    2014년부터 시작된 호르몬치료. 남자 청소년들은 10대 청소년 시기 동안 서서히 남성호르몬이 증가하며 근육과 목소리 기타 여러 가지 남성성이 발달하게 된다. 학령기에서 청소년기까지 거의 7~8년간 호르몬의 변화는 최저와 최고를 비교할 때 1000% 가까이 증가하는 수치라고 한다. 그런데 28년간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남성 호르몬을 맞게 되면 갑작스럽게 몸의 변화가 일어나 그에 따른 고통이 뒤따른다. 이효진씨 역시 호르몬제를 맞으면서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많은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 힘든 시간들을 보내며 겉모습은 남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던 시간들그리고 다시 여자로 돌아오기까지.

     


    - 변화와 함께 고통의 시간

    지금까지 여자로 살던 사람이 남성호르몬을 맞으니 몸이 급격하게 힘들어졌어요. 목소리가 굵어지고 없던 근육이 여기저기 마구 생기면서 몸이 너무 무겁고, 하루 종일 졸리고 얼굴이 변해갔어요. 계속 호르몬을 맞아야 하니 돈을 벌어야 하는데 당시 패션 쪽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가장 상위 계층의 시스템을 경험하며 한창 잘 나가다가 모든 것이 곤두박질치게 된 시점이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오만한 마음에 허드렛일은 못하겠고 겨우 겨우 일을 이어서 하는 중에 스트레스도 많은데 호르몬까지 맞으니 우울증이 왔어요.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만난 너무 낯선 사람의 모습, 나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목소리. 혼자 있을 때는 무섭기까지 했어요. 이태원 거리를 지나가다 귀여운 꼬마가 있어서 예쁘다고 칭찬하니 옆에 있던 할머니가 삼촌에게 인사해야지하는데 갑자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삼촌, 남자라는 표현을 바라고 있었지만 그 말이 내면 깊은 곳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는 누구인가하는 생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도 만나기 싫고 집과 사무실만 오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심한 우울감이 저를 찾아왔어요. ‘나만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왜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남자가 되고 싶어했는데 남자인 지금의 내가 너무 힘들고. 뭔가 모든 것이 다 꼬여버린 것 같았어요.


    - 다시 돌아가자 결단

    그렇게 대인기피증까지 와서 힘들 때쯤, 동네 친한 지인이 어느 날 자신이 ()주님 말고 진짜 주님을 만났다며 교회 한번 가자고 했는데 그렇게 교회에 발을 딛게 된 것이 제가 새롭게 되는 변곡점이 되었어요.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서 힘들었던 마음이 풀어지고 우울증도 좋아졌어요. 그렇지만 저의 성향이 한번에 바뀐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고, 교회에서는 제가 남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다들 그냥 남자로 알고 있었거든요. 동성애가 성경에 맞지 않는 죄라는 것을 알았기에 머리로는 안 된다라는 걸 알지만 마음은 단번에 바뀌지 않아서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여전히 여자를 향하고 있는 제 자신이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저도 이제 모르겠어요울며 기도했던 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과 같이 한참 뛰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이게 아닌데, ‘나 다시 돌아가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여자랑 연애 안 하고 여자랑 결혼 안 한다고 기도를 하게 됐어요.”

     

    - 남아있던 한 가지, 호르몬 중단까지

    여자를 좋아하지 않기로 결단을 했지만 마지막 남은 것은 성전환증이었어요 그때도 여전히 호르몬을 투여하고 있어서 남자의 모습이었거든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죠. 나는 여자인데 겉모습도 목소리도 남자이고. 그렇지만 이것만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한 켠에 있었어요. 그냥 여자랑 연애만 안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쯤 갑자기 몸에 문제가 생겼어요. 호르몬을 2주에 한번씩 맞으면서 이미 생리는 끊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정출혈이 생겨서 병원에 갔어요. 원래 초반 호르몬이 안정되는 시기에 이런 부정출혈이 생길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몇 년 동안 호르몬을 맞고 안정화된 다음에 부정출혈은 별로 없는 일이라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검사 결과 자궁과 난소가 너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거에요. 병원 원장님도 놀라시면서 이렇게 호르몬 치료를 2~3년 이상 하면 자궁과 난소가 다 수축되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정상적일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하나의 사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호르몬까지 끊고 다시 여자로 돌아가야 하는 사인. 병원에서는 자궁을 그냥 들어내라고 했어요. 이렇게 완벽하게 남자로 되기도 힘든데 그냥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고. 그러나 이렇게 몇 년 간이나 호르몬을 맞아서 겉모습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되었지만 내 안에 여성성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사인이기에 저는 호르몬까지 이제는 중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그러나 다시 긴 터널 속에서

    저를 돕고 있던 교회의 목자 분께서 제가 이제 완전히 호르몬을 끊고 돌아가야겠다고 하자 너무 감동해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어요. 그리고 교회에서 간증까지 하게 되며 교회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죠. 지금까지 남자로 알던 저를 이제는 자매로, 여자로 알게 되면서 그 이후 저는 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됐던 것 같아요. 호르몬을 끊고 바로 짠하고 제 모습이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보통 다시 돌아오는데 길면 4~5년이 걸린다고 해요. 제 모습이 여전히 겉으로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이제 교회에서 저는 여자입니다.’라고 간증을 했기 때문에 여자로 살아야 하는데 가장 먼저 화장실 가는 것이 문제였죠. 이전에는 그냥 남자 화장실을 다녔었지만 이제는 여자인 걸 공개했는데 계속 남자 화장실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 화장실을 가면 제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고. 뿐만 아니라 몸에 문제가 많이 생겼어요. 원래 모든 사람은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다 있는데 각 성별에 따라서 두 호르몬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해요. 저는 몇 년간 남성호르몬을 투여해서 남성성을 더 높여 놨는데 갑자기 2주에 한번 맞던 호르몬을 안 맞으니 호르몬에 불균형이 생기면서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졌어요. 다시 여성 호르몬제를 맞을 수도 있지만 이제 다시는 호르몬이라는 것을 맞고 싶지가 않아서 일부러 안 맞았거든요. 그래서 마치 하루가 12시간인 것처럼 방전이 됐어요. 몇 시간 일하면 탈진이 오고 그러다가 쓰러지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이 참 부담스럽고 힘들었어요. 여전히 남자와 같은 외모가 있었기에 만나는 분들이 과도하게 아는 체를 할 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마치 제가 어두운 터널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기도하는데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며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내 자신이 기뻐하며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아요. 호르몬을 끊은 것이 20189월 정도인데 이렇게 1년반만에 여자로 돌아온 것은 기적이라고 해요.”


      


    - 올바른 성 가치관을 교육하는 성교육 강사

    최근에 교회에서 이렇게 간사로 부르심을 받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제 자신의 경험을 비춰볼 때 어릴 때 성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성폭력을 당하고 올바른 교육을 받으며 치유되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성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며 한국가족보건협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김지연 약사님과 연결이 되며 갑작스레 올해 1월 의미있는 포럼에서 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을 겪고 있거나 또 그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10대들을 위해서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갖고 교육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3월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예정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누군가 애기할 사람이 필요해요. 저는 제가 직접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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