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해체의 시대 문명과 생로병사 해체 프로젝트
‘해체의 문명’으로 일컬어지는 21세기는 이전 세기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사실 우리는 ‘전쟁의 세기’로 일컬어졌던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했었는데, 지난 세기 내내 전 세계를 참혹한 이데올로기 냉전체제로 몰아갔던 맑시즘(Marxism)이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인류 문명에 대해 한층 더 심화된 불안감을 감지하고 있다. ‘과연 이 시대 문명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가?’ 인류 역사상 많은 문명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했지만, 오늘날 이 시대의 위기는 과거의 위기와 전혀 성격을 달리하여 우리를 경악케 한다.
맑시즘은 한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듯했으나, 21세기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인류 문명을 가공할만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라고 불리는데,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의 가면을 쓴 맑시즘으로써 공산주의보다 더 심각하게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전통 기독교 사상을 전면 부정하는 후기 구조주의(post-structuralism)1 와 인식을 같은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 이후 글로벌 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 특징은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과 절대적 진리의 거부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 시대문명의 가장 주목할 만한 동향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대담론과 절대적 진리 가운데서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자연질서를 해체시키려는 움직임이다.
특별히 생로병사 중에서 죽음을 해체시키려는 움직임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파생시킨 또 다른 아류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또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데, 이 양대 휴머니즘은 유전자 조작, 생명 연장 등의 첨단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변형함으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대사조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거대기업들,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 산업(IT) 거부들이 불멸(不滅)을 실현해줄 생명의 묘약을 찾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와 과학자, 의학자들 역시 종교의 도움 없이 육체적 영생(永生)의 문을 열어줄 열쇠를 발견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멸과 영생 프로젝트에 돌입한 글로벌 기업 중에서 대표적으로 구글(Google)은 2013년에 바이오 벤처회사인 ‘칼리코’(Calico)를 창립하면서 ‘죽음의 해결’(Solve Death)을 창립목표로 내세웠다.
그런데 인간의 삶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죽음을 해체시키려는 움직임보다 더 경악할만한 일이 우리 문명사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 누구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성별(性別)이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철폐하려는 가공할만한 움직임이다. 이 젠더 이데올로기 역시 포스트모더니즘과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등장한 시대사조인데, 인간의 출생 시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문화·심리적 성인 ‘젠더’(gender)를 통해 스스로 선택에 의해 성별을 결정할 수 있다고 강변함으로써 남녀 고유의 천부적 성정체성을 허물어버리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인간 존재의 본질이 되는 성별의 정체성이 파괴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유념할 때, 이것은 인류 문명사적으로 대단히 가공할만한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해체의 문명에서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해체 프로젝트를 정리하면 이렇다. 즉 죽음의 해체는 ‘불멸과 영생 프로젝트’로 구현된다면, 성별의 해체는 ‘젠더 주류화(= 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 프로젝트’로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떤 영적 교훈을 발견하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적 현주소는 과연 어떠한가? 이 시대문명은 대관절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가? 현재 세계 학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히브리대 교수이자 게이로 커밍아웃한 유발 하라리(Y. N. Harari)2는 이 시대인들이 최고로 희구하는 바를 피력했는데3, 이를 통해 필자는 21세기 문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즉 인류가 오랜 가난과 전쟁의 참혹한 역사를 겪고 나서 엄청난 번영과 건강과 평화를 구가한 다음에는 이제 죽음을 극복하고 행복을 누리고 신(神)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거라는 것이다. 바로 신처럼 영생불사하면서 성적인 쾌락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분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허용하는 시대사조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로 기사회생한 맑시즘의 인류 문명사 위협
맑시즘의 인류 문명사 위협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끝나지 않는데,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를 통해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다시금 우리 시대에 암울한 그림자를 던지기 때문이다. 맑시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지만, 사실상 이것은 이미 여러 사상적 경로를 통해 입증되었다.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시대사조들에는 맑시즘의 망령이 전방위적으로 드리워져 있는데, 특히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뿌리인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은 맑시즘의 지대한 영향으로 세력을 공고히 다져왔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성’(性)의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성정치-성혁명 이론’과 ‘68혁명’이 만나면서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는데, 젠더 이데올로기에 자양분을 주었던 ‘68혁명’과 ‘성정치-성혁명 이론’ 역시 모두 맑시즘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근대세계에 총체적으로 반발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직접적으로 부각시킨 68혁명은 네오-맑시즘(Neo-Marxism)의 영향을 받아 반(反)체제·반(反)문화의 기치를 올린 이후 히피(hippe) 문화와 베트남 반전(反戰) 운동을 통해 국제화·조직화된 좌파 단체들과 결탁하였다. 68혁명 세력은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에 열광하여 중국 현대사의 정치·문화적 대재앙이었던 문화혁명을 벤치마킹함으로써 68혁명을 전 세계적 문화혁명으로 확산시켰다. 무엇보다도 68혁명의 핵심은 서구세계가 자랑하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영향으로 형성된 서구적 근대성의 해체이므로, 반(反)기독교적인 색체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 68혁명은 유럽의 사유체계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킴으로써, 이들이 성장하여 글로벌 정치·경제·사화·문화계 전반을 장악하게 된 오늘날 서구세계를 또 다시 뒤집어놓게 된 것이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방황하던 21세기 한국의 좌파는, 유럽의 68혁명을 대안으로 여기는 가운데 성소수자 투쟁으로 세력결집에 성공한 유럽 좌파의 노선을 추종하는 상황이다.
68혁명에 의해 사후 부활한 빌헬름 라이히(W. Reich)는 체제 전복이론인 맑시즘(Marxism과 성욕 억압이론인 프로이트주의(Freudianism)를 결합하여 성충동 해방이론인 성정치-성혁명 이론을 주창하면서, 진정한 해방이란 성해방을 동반해야 하며 성혁명을 이루기 위해선 성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라이히가 획책한 성정치-성혁명 전략의 핵심 도구였는데, 이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성애화(sexualization)가 집중 공략되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하여 섹스폴(Sex-Pol) 운동을 조직했던 라이히는 당시 소련연방이 행했던 동성애 금지와 임신중절의 금지, 청소년들의 성적 자유 억압에 불평을 제기하기도 했다. 라이히 이후 성정치-성혁명 이론은 급진적 페미니즘과 결탁함으로써, 여성 위에 군림하는 헤게모니(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에 대한 파괴는 물론 남녀 성정체성을 해체시켜야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젠더주의로 변모하게 되었다.
여기서 급진적 페미니즘의 변질된 형태로 발흥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형성과정에 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이 점차로 변해왔는데, 이를 크게 제1세대(1789~1914), 제2세대(1914~1990), 제3세대(1990~)라고 지칭한다. 19세기 중엽 여권신장·남녀평등 운동으로 시작한 초기의 건전한 페미니즘은 68혁명을 분기점으로 제2세대로 넘어가면서 순수한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변천했는데, 급진적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임신·출산 같은 생물학적인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이루려는 시대사조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제3세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종하는 동성애 옹호세력이 강행하는 성정치-성혁명 이론과 결탁하여 인류 사회의 근간인 성별질서와 가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것이다. 이처럼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는 한 뿌리에서 연원하므로, 이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필자는 ‘젠더 페미니즘’이라고 지칭한다.
맑시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상호 긴밀한 연관성은 도처에서 드러남으로써 너무나 분명하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동성애를 단순히 동성 간의 애정행각이나 성도덕 붕괴의 측면에서만 인식했지만, 젠더 이데올로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은 성소수자들의 정치투쟁을 사회주의 혁명 그 자체로 보고 있다4. 자본주의를 철폐하려면 이를 지탱하는 가정과 인간의 ‘성’을 혁명적으로 재구성해야만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가정과 건전한 성윤리의 배후에서 견고한 사회적 기반의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하는 기독교를 파괴시켜야만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 때문에 맑시즘 정치투쟁 현장에는 성소수자들의 정치투쟁 또한 동시적 주제로 다뤄지며, 동성애를 비판하는 기독교 대(對) 동성애 옹호 진영의 일명 ‘악의 연합’ 간의 일대 영적·사상적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명 위기의 중심점에 선 시대사조, 젠더 이데올로기
필자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 할수록 이 이데올로기가 21세기 시대문명을 위기로 몰아넣는 중심점에 선 시대사조라는 확증을 갖게 된다. 특별히 젠더는 그 위기의 중심점에 놓인 핵심 키워드, 위기를 해명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근본적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래 젠더는 언어학에서 명사(중성형)에 사용되던 단순한 문법용어에 불과했지만, 1950년대에 ‘존 머니’(J. Money)라는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이자 성심리학자에 의해 실험적으로 사용된 이후 1970년대에 들어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서구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결정적 분기점으로 젠더 용어가 공식화되었는데, 이때부터 젠더는 사회·문화·심리적 성으로 명시되었고 섹스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성관련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일개 성심리학자가 실험적으로 사용했던 용어, 그것도 결국 사람들을 기만한 허위 실험으로 판명된 희대의 사건에 오용되었던 용어가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남녀를 위시하여 모든 성소수자들의 성정체성을 포괄하는 단어로 전환된 것은, 참으로 참람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젠더란 용어가 성소수자들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포석을 깔아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영어권에서는 섹스와 젠더가 명백히 구분되기 때문에 젠더의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용어가 모두 동일하게 ‘성’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젠더에 해당하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번역이 매우 어려운데, 이제는 종전처럼 ‘섹스’와 ‘젠더’를 모두 ‘성’으로 모호하게 번역하지 말고, 섹스와 젠더로 명확히 구분하여 번역하면서 사회 전반에 젠더의 위험한 실체를 알릴 필요성이 있다.
여기서 인간의 성(性)에 대한 이해의 변천사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성은 출생 때 타고나는 생물학적 성(sex)에 따라 남성(男性) 또는 여성(女性)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었다. 과거에는 이 생물학적 성으로 인간의 성별을 남녀 이분법적으로 이해했고, 오늘날 또 다른 성으로 통용되는 젠더(gender)는 불필요하였다. 그런데 젠더 이데올로기가 널리 확산되면서 성을 다원주의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성을 성기·염색체·성호르몬으로 결정되는 생물학적 섹스와 사회·문화·심리적 성으로 간주되는 젠더로 구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날 섹스는 성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점차 제한되고, 젠더가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주류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섹스로 성별을 결정했을 때는 섹스 주류화(sex mainstreaming)였다면, 이제는 젠더가 주류가 되게 하자는 의미에서 젠더주류화(gender mainstreaming)가 서구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젠더에 입각하여 성을 다원주의적으로 이해하면서 파생되는 심각한 문제는 젠더의 실체가 기분과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성이다 보니까, 각자가 스스로 느끼는 대로 성별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정체성이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젠더는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닌 시시각각 사람들의 심리 상태와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급기야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용인하기 시작했고, 수십 가지의 온갖 괴이하고 비정상적인 젠더 퀴어들(gender queer)을 양산하게 되었다. 사실상 젠더 이데올로기는 각종 부도덕한 성관계를 맺는 젠더 퀴어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 그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이러한 젠더주의가 글로벌 세계에 널리 확산함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젠더주의의 대표주자이자 이 시대 학술계의 파워엘리트(power elite)인 주디스 버틀러(J. Butler)이다. 그는 성정체성 해체에 주력할 뿐만 아니라, 젠더주의의 핵심전략인 젠더 주류화의 이론적·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버틀러는 특히 자신의 저서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에서 섹스가 젠더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젠더가 섹스에 의해 규정된다고 강변한다. 즉 섹스는 젠더에 앞서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관습과 기대에 의해 후천적으로 장시간에 걸쳐 형성된 젠더라는 정체성이 더 자연화된 개념이라는 것이다5. 또한 버틀러는 젠더란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젠더 간에 불가피 트러블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기술하면서 그 명백한 증거가 ‘동성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에 근거하여 그는 동성애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하고 성소수자들(LGBTIQA)을 규합하는데, 이것은 버틀러 자신이 레즈비언이기에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행하는 패륜적 성혁명과 인류 문명사의 대재앙
젠더 이데올로기의 막강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장구한 세월 동안 인류 사회를 보편타당하게 지배해왔던 관습과 규범이 지난 50년 사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6. 천부적으로 부여된 남성과 여성 고유의 신체적 기능은 물론 남녀 양성이 결합하여 이루는 가정 및 결혼제도 역시 해체되고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들어와 북미와 서유럽에서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 가열차게 강행되고 있는데, 성혁명이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를 해체시키고 온갖 다양한 젠더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프리섹스를 옹호함으로써 전통적 결혼 및 가정 해체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젠더주의는 성규범을 와해시키고 도덕적·윤리적 기준의 해체를 강요함으로써, 예로부터 전승된 숭고한 가치개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젠더주의의 내용으로 포스트모던 세계를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이것이 인류 문명사에 어떤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강행하는 성혁명의 핵심은 바로 성규범의 해체이며, 그로 인한 악영향은 사회 전체의 성애화(性愛化)를 통한 타락과 패륜의 확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혁명이 한창 진행 중인 서구세계에서는 성규범이 와해되고 도덕적·윤리적 기준의 해체가 강요됨으로써, 음란의 규범이 형법을 통해 강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과 관련된 강력한 규범들이 급속도로 풀려서 사람들이 점점 더 성적으로 문란해지고, 특히 동성애가 또 하나의 묵인된 성문화, 또 다른 인류의 대체적 쾌락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성도덕의 규제 완화는 문화가 부패한다는 징후인데, 이것은 개인에게 손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혼의 급증으로 인한 가족공동체의 붕괴, 광범위한 정신·심리적 장애의 만연, 사라져가는 질병이었던 성병의 전염병적 유행, 엄청난 수효의 태아를 죽이는 일 등은 사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는 선악을 위한 나침반이 필요한데, 특히 성은 도덕의 닻에서 분리될 때 필연적으로 영적·사회적 붕괴가 일어나기에 이에 대한 올바른 지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생사와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성규범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장 사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 성도덕이 무너져 버리면 한 개인은 물론 가정공동체와 사회공동체가 무너지고, 더 나아가 국가공동체, 심지어 문명 전체가 붕괴된다. 이런 연유에서 인류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성적 일탈을 강력한 사회적·법률적 제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성규범을 매우 엄격한 처벌 규정으로 보호했던 것이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이든 비(非)그리스도인이든 종교적 이해관계를 떠나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동성애는 어느 사회에서나 비난과 반대에 봉착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에 대해 독일 튀빙엔(Tübingen) 대학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페터 바이어하우스(P. Beyerhaus) 교수는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즉 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정치적 신분제를 전복시킨 혁명), 1917년 볼셰비키 혁명(경제적 계급제를 전복시킨 혁명)과 함께 젠더주류화를 ‘제3의 세계사적 혁명’(생물학적 질서를 전복시킨 문화인류학적 성혁명)이라고 일컬으면서 남녀의 성별 질서, 결혼과 가정의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인류 문명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혁명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바이어하우스는 이것이 남녀의 생물학적 성별을 창조질서로써 주신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부정하는 사탄적 원천을 지니며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신론적·무신론적 이데올로기라고 역설하였다7. 이미 2012년 12월 21일에 교황 베네딕트 16세도 젠더 이데올로기 안에 깊이 숨겨진 비(非)진리성과 문화인류학적 혁명을 경고하기도 했다.
곽혜원 박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튀빙엔(T bingen)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thel.)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 공동체 <21세기교회와 신학 포럼>을 이끌고 있다.
1.후기 구조주의는 보편적 이성과 절대적 진리에 입각한 구조를 해체하려는 급진적 시대사조로서 자크 데리다(J. Derrida), 미셀 푸코(M. Foucault), 질 들뢰즈(G. Deleuze), 자크 라캉(J. Lacan), 주디스 버틀러(J. Butler) 등이 후기 구조주의자로 분류된다.
2.유발 하라리는 2018년 유튜브에 동영상 “게이로 산다는 것”(On being Gay)을 올리고 커밍아웃하면서 자신이 어릴 때부터 소년을 좋아했었고, 현재는 동거하는 남성을 남편이라고 부르면서 부부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성애가 자신의 연구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고 발언함으로써 글로벌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3. “장구한 세월 인류는 기아와 역병,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왔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과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不滅)과 행복(幸福), 신성(神性)이 될 것이다. 굶주림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인데, 곧 신(神)이 된 인간(人間),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되려고 한다”: Y. N. Harari/김명주 역,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서울: 김영사, 2017), 39.
4. Cf. 이정훈,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17f.
5. J. Butler/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서울: 문학동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