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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 퀸 예수’ 공연이 ‘예배’라는 한신대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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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채플 시간에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온 예수’라는 제목의 연극이 공연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지난 10월 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신대 예배당에서 사전 녹화되어, 10월 6일 신대원 내부 인터넷 망을 통해 송출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예배는 한신대 신대원 성정의위원회와 민중신학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한 것으로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반동성애를 외치며 성소수자를 핍박하는 개신교도들 앞에 ‘드랙 퀸(Drag Queen)’으로 분장한 예수가 나타나 이들을 나무라며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을 남기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번 공연의 의미와 파급효과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이제 성소수자 운동(LGBTQ Movement)이 문화를 매개로 하여 적극적으로 한국 사회, 특히 기독교계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드랙 문화(Drag Culture)’란 무엇일까요?

드랙 문화란 생물학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이란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고, 성 정체성이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성(sex) 한가지로만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이 있으며 또한 늘 유동적이라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대중문화로 표현된 것이 바로 드랙 문화라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드랙 문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드랙 퀸(Drag Queen)’과 ‘드랙 킹(Drag King)’입니다. ‘드랙 퀸’은 생물학적 남성이 화려하고 기괴한 화장과 가발, 의상 등으로 자신을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와 반대로 여성이 수염을 달거나 어깨가 큰 남자 옷을 입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을 ‘드랙 킹’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드랙 문화는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우리나라에는 201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소개되었고 2018년부터는 퀴어축제와 별도로 ‘드랙 퍼레이드’라는 이름의 축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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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성과 여성의 성 정체성을 바꾸는 이야기들은 오래 전부터 영화나 드라마 등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패왕별희(1993)’, ‘왕의 남자(2005)’와 같은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주인공에 놀라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뮤지컬 계에서는 이미 ‘헤드윅’이나 ‘킹키 부츠’와 같은 작품을 통해 화려한 드랙 문화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동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드랙 쇼가 인기를 끌고 있어서 오디션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이들은 주로 남성이 여성의 외모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립싱크로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고 합니다. 드랙 아티스트로 성공하여 유명 연예인의 뮤직비디오나 해외 패션쇼 무대에 서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드랙 문화는 정상적인 것에 식상한 나머지 더 이상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괴하고 낯설지만 재미있고 신선한 그 무엇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랙 문화는 일부 성소수자들의 자기 표현 또는 몇몇 사람들이 일탈에서 느끼는 재미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삶의 방식과 성행위에 대해 도덕적 면죄부를 주기 위한 또다른 진지전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세계관을 심어주는 지극히 위험한 시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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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핍박받는 소수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문화적 권력층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게이, 레즈비언과 같은 단어들은 사회의 금기어였고, 이들은 언제나 음지에 숨어서 자신들의 성적지향을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2천년 이상 기독교문명권에서 살아온 서구인들에게 동성간의 성행위나 남녀가 서로 옷을 바꿔 입는 행위는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져버린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동성간 성행위를 하거나 트랜스젠더가 되거나 드랙 킹이나 드랙 퀸이 되는 것이 더 이상 죄도 아닐 뿐 더러, 자기 결정권에 속하는 인권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들은 언제나 ‘도덕적 인정’에 목말라 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기들의 삶의 방식과 성행위를 정당화한다고 할지라도 사회가 그것을 도덕적인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은 늘 불안하고 그들의 존재는 스스로에게조차 불완전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비단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과학적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의 삶의 방식이 결코 보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익하거나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 근거가 위협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퀴어축제라는 이름으로, 드랙 문화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도덕적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지성의 세계를 공략하고 다양성, 관용, 자기수용성 등 현대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만한 단어들을 동원하여 대중에게 어필합니다.

현재 서구사회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치원생부터) 드랙 퀸 스토리 타임이라는 것을 공립학교나 도서관 등에 만들어서 드랙 아티스트들을 초대하여 드랙 문화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드랙 문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무해한 것으로, 오히려 권장할 만한 것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구의 많은 청소년들 중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성전환 수술을 시도하거나 성전환 호르몬 치료를 받는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드랙 문화를 끌어들여 어렸을 때부터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자해행위를 장려한 결과입니다.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유흥의 성지인 이태원과 함께 신학교가 드랙 문화에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의 진지전이 가장 거룩한 장소이어야 마땅한 곳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한신대 신대원에서 ‘드랙 퀸 예수’를 공연한 목적은 각 신학교에 있는 성소수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신학교 안에 거룩하게 거듭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준으로 선악을 분별하기로 결정한 신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좌우할 신학생들이 예수님을 기괴한 모습의 드랙 퀸으로 등장시키는 일을 ‘거룩한 예배’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심판 때는 무서운 공의로 각 사람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성경이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이런 신학적 균형을 잃고 무분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외치며 성경이 ‘죄’라고 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과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며 경건과 불경을 분별하는 모든 것을 차별이란 이름으로 죄악시 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할까요? 한신대가 만들어 낸 ‘드랙 퀸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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