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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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 정치지형에 관한 여론조사(블런델-고스초크 모델에 따른)에 따르면 우리나라 19세-29세 청년 연령층에서 진보주의자가 42.9%로 가장 많았고 보수주의는 9.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 입소스코리아 2018.10)
청년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최근 보수주의를 외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에게 보수주의자들이 어떤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정당들은 보수주의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했고, 오히려 보수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다. 즉 우리는 보수주의 가치 상실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 강력한 반공주의 노선을 통해 지지세력을 규합했던 국내 보수세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퇴하게 되었고 청년세대에 더 이상 유의미한 이념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균형과 견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민주주의의 과제와 맞물려 현 우리나라의 보수의 부재는 자칫 우리 사회가 편향된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 글은 기존 보수 정당의 입장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에 부재한 본래 보수의 가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제시한 보수주의의 정신들을 소개하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현 사회 쟁점들을 보수의 가치를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보수주의의 가치에 대한 탐색은 ‘보수주의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물음에 대해 생명, 가족, 자유 등 구체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으나, 정치적 보수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는 ‘창조주에 대한 경외’라고 대답한다. 다른 말로 ‘절대적 선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고 표현할 수 도 있다. 이러한 대전제에서 출발한 에드먼드 버크의 정치적 삶과 철학에는 보수주의를 개념화한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먼저 버크가 생각한 보수의 가치는 절대적 선 즉,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버크는 절대적 선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추상적이고 급진적인 인권사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역설하였다. 버크는 만약 절대적 선이 없다면 개인에게 의무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사회계약 내지 힘의 논리로만 국가와 사회가 운영된다면 결국 개인의 의무는 그 자체로 의무가 아닌 단지 권력을 잡은 힘에 대한 호소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1790년 11월>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인간이 신을 가장한다면, 머지않아 악마처럼 행동한다.”고 평가하며 프랑스 혁명이 이후 폭력과, 전쟁, 전체주의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했다.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관점에서 우리는 최근 입법 시도 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안 장혜영 의원 대표발의> 일명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먼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프랑스 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는 68혁명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68혁명의 구호를 통해 사회주의와 급진적 젠더이데올로기가 서구사회를 강타했고 이제 대한민국에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침투했다. 보수주의 관점에서 인권존중의 정신에 매우 공감하는 바이며, 실제로 에드먼드 버크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 종교 탄압에 적극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내포하고 있는 추상적이며 급진적인 인권 사상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여 진정한 선험적인 선이 무엇인지 찾아가지 못하도록 국가가 개인의 입을 막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선험적인 아름다움과 절대적 선에 대한 고찰 내지 토의 없이, 일부 정치적 이권을 위해 급진적 평등권을 이식하게 된다면 버크가 경고한 프랑스 혁명의 이후의 만인의 투쟁 사회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보수주의는 선입견과 규범을 존중할 것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버크는 인간은 악하지만 사회를 향한 절대자의 의도는 선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자의 의도는 비록 명료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선입관과 규범에 녹아져있다고 말한다. 결국, 절대자의 의도로 형성된 역사의 선입견과 규범은 지켜져야 하며 국가 위정자들은 이것을 입법 내지는 해석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입견에 녹아진 절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시대에 따라 일반적인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이 정치가의 역할인 것이다. 선입견(prejudice)이라는 말은 굉장히 편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버크에게 전통과 선입견, 규범은 신의 의도가 담겨있는 소중한 가르침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작년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아 현재 그 존치여부가 불분명한 낙태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입견은 단순히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습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선’의 관점에서 인정되어온 인류의 인식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자연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생명존중 사상은 시기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류에게 계승되어온 소중한 가르침이다. 입법자는 이러한 생명존중이라는 선입견을 사회 영역에서 찾아내고 보완하여 이 시대에 맞는 일반적 언어로 재구성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헌재는 낙태죄를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태아의 생명권은 시기에 따라 보호정도가 다를 수 있고, 자기결정권에 태아의 생명을 종결할 권리가 포함된다고 설시하는 등 인류가 그동안 누려왔던 생명 존중의 규범에 반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주의는 인간의 악함과 부족함에 대한 겸허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마르크스와 앵겔스의 공산주의, 이성을 중시한 계몽주의, 루소의 낭만파들은 모두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한, 이를 통해 인간 외부의 친절하지 않은 환경들을 극복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버크는 인간의 본질은 항상 악하며 짐승과 같은 본능이 이성 저변에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단순히 헤겔의 유기체적 사회이론이나 루소의 낭만적 계몽주의, 콩도르세의 진보이론으로는 진정한 진보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특히, 버크는 사회 진보를 위해 전문가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수의 정신은 앞서 살펴본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에 시사점을 준다. 먼저 차별금지법은 형사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차별행위’의 판단기준을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감정에 맡겨놓았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 권고, 시정명령 등 강력한 권력을 위임하는, 견제 없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명확한 기준과 견제수단 없이 인간의 선함에 기대하여 운용되는 구조인 것이다. 한편, 낙태죄 불합치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임신 중 일정 기간 동안은 여성의 이성적 판단에 따른 낙태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낙태죄 조항이 폐지되어도 낙태율이 증가할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최근 우리나라의 입법, 해석 방향은 결국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맹신을 통해 국가를 극심한 투쟁 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절대적 약자인 태아의 생명권은 무시될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 인간의 악함을 인정하고, 도덕적이고 자연법적인 선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믿으며 살아간다. 절대적 선을 인정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상대적 선을 주창하는 사람들도 결국 상대적 선의 개념 자체가 진리임을 믿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각자의 믿음이 사회정의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버크의 시대와 달리 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통한 다수성을 획득해야 한다. 만약 각자의 좋음이 선이라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경기장 안에서 논쟁을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 선에 대한 인정이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되고 있는 이 시대는 결국 피곤함을 피하고 서로 연관되기 싫어하는 냉소적인 개인주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최근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며 ‘언택트’사회를 살아간다. 이는 비단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선입견과 규범에 대한 존중을 버림으로 과거와 단절되었고, 절대적 선에 대한 탐구와 토의를 각종 규제로 막아 버리며 공동체라는 개념은 낯설어지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보수의 가치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보수의 정신, “절대적 선에 대한 인정과 탐구, 인간의 부족함에 대한 겸허한 인정, 선입견과 규범에 대한 존중”이 우리에게 인류의 뿌리로부터 그 자양분을 공급해 냉소적인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만들어 주길 기대해본다.
라승현 인턴기자
- 다음글 불확정성의 원리 속에 있는 미래를 대하는 자세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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