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부재’와 ‘성적자기결정권’이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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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내면 교사 고발하는 학생들 …교사 전용 법률지원 보험 인기 (2017.07.04 중앙일보)
학생 깨우다 맞은 선생님 '얼굴뼈 함몰'…교육청, 학생 고발 (2019.11.15 SBS뉴스)
최근 뉴스기사 헤드라인을 많이 장식하는 기사 제목들이다. 자식이 부모님을 고발하고 학생이 선생님을 놀리고 고소한다. ‘나’의 인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 ‘나’의 감정을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없다는 절대적 회의주의과 모든 것을 인정해야한다는 상대주의의 오래된 뿌리가 ‘내’생각, ‘내’ 선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삶 속에 깊이 자리 잡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권위’라는 말은 하기도 어려워지고 듣기도 거북한 말이 되었다. 권위는 나를 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전하고 전복시켜야 하는 것이며, 내 삶에 있는 소위 ‘권위적’인 존재들 또한 무너뜨려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왔다. 이러한 권위의 탈피는 가깝게는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부모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요즘 세대에 만연한 권위의 부재는 ‘성적자기결정권’과 연결되어 더욱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기결정권이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져 온다 하더라도 자신과 관계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은 본래 원치 않는 신체적, 성적 접촉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의 의사를 표시함으로 성적 폭행 및 추행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당연하고도 정당한 권리를 확보한다는 취지를 가진다. 하지만 ‘권위’의 존재를 거부하는 이 시대의 흐름과 나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적자기결정권’이 만나게 될 때, 안타깝게도 이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성적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게 될 수 있다.
특별히 이는 청소년들에게 치명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내용이다.
이처럼 타인이나 사회적 관행 등 외부의 강요 없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성적 행동을 결정하는 권리를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고 한다. <생활과 윤리 -금성출판사>
‘성적 의사 결정권’이란 자신의 성적 개념을 스스로 확립하고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성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하여, 성적인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중학교 기술가정 - 동아출판>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욕구와 권리를 가진 주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성적인 행동을 판단하고 시행할 수 있다는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에 관한 주장은 자칫 ‘성’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책임을 보지 못한 채 무분별한 성접촉 및 성관계를 부추기도록 남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청소년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성적인 자유를 막는 흔히 ‘꼰대’의 소리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존중’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아무 규제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존중이 아닌 방종이다. 그렇다면 왜 부모들이 유아들에게 칼을 쓰지 못하게하며, 왜 노인분들에게 눈 오는 날 등산은 되도록 나가지 말라고 하는가. 이는 단순히 칼이 나빠서, 등산이 나빠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 때에 이 행동을 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은 너무나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되고 신중한 접근과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성은 단순히 ‘20살이 넘었으니, 지금부터 모든 성행위 및 성관계를 자유롭게 맺고, 너의 성적 끌림에 따라 아무나 만날 수 있어!’를 의미하는 나이의 단순한 기준선을 둔 놀이가 아니다. 성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고귀한 것임에 동시에, 나의 소중한 몸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서로에게 내어주는 행위로 평생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게 되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 각종 성병 등의 위험을 안게 되고, 결혼 후에는 간통, 성폭행으로 인한 가정 파괴 등 치명적인 상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성’에 대해 처음 시각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이다. 이 때 성에 대해 배우고 가지는 태도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결혼 이후에도, 평생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시기에 ‘성적자기결정권’만을 주장하며 ‘청소년의 성을 억압하지 말아라!’라고 외치는 말 안에는 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책임이 담겨있는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쉬쉬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성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지 또 그렇기에 가정을 위해 또한 다음 생명을 위해 책임감 있게 다뤄야 하는지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여성가족부의 추산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모는 38,000명이다. 이 중 10대 미혼모비율이 3분의 1이상으로 추정되며 잠재적 미혼모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10대 청소년 미혼모의 출산 및 양육 경험’이라는 연구 논문에 따르면, 10대 미혼모 중 67.1%는 ‘임신은 원하지 않았던 결과’라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갑자기 한번에 뚝 떨어진 결과가 아니다. 오랫동안 무너져온 권위와 동시에 반대로 오랫동안 쌓아왔던 자기결정권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만나게된 것 뿐이다. 아직 책임능력이 없고 성을 포함한 모든 것에 가치관을 정립해가는 청소년 시기에 부모님, 선생님에 대한 모든 권위가 부재한 채 ‘성적자기결정권’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많은 청소년들을 성적 위험에 빠트리는 빛깔만 좋은 독이 될 수 있다. 점점 성에 대해 왜곡되고 쾌락중심의 일시적 관계만 추구되는 이 시기에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앞에 언급된 바와 같은 올바른 권위의 회복이 필요하다. ‘권위’는 피곤하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는 편견이 회복되어야만한다. 조직이 있는 곳에는 질서가 필요하며, 질서가 있는 곳에는 보호와 책임이 있다. 권위가 붕괴된 조직에는 질서가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학교에서는 선생님, 회사에서는 상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그 조직에 질서를 부여하며, 이는 결국 나의 권리를 궁극적으로 더욱 보호할 수 있게 한다. 건강한 권위의 필요성이 지대함에도 사실 이 시대에 올바른 권위를 경험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없다는 문제점에 필자 또한 공감한다. 나를 주장하고 시키고 지배하려는 권위는 ‘나를 누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권위자의 도덕적 실수와 타락은 권위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따라서 이제는 각 가정과 학교 직장마다 권위를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이 아닌 그에 맞는 책임과 섬김을 갖춘 진정한 권위자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많은 학자들은 권위는 ‘섬김과 봉사’의 발로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으며, 진정한 권위는 조직원들을 섬기고 본을 보일 때 세워지게 된다. 이 시대에는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시키는 자’보다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앞서가는 리더’들이 세워질 때 권위에 대한 많은 상처들이 회복되며 권위를 통한 보호와 질서가 세워질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결정권'이라는 말 또한 더욱 건강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각 가정과 학교, 캠퍼스와 직장에 온전한 권위, 건강한 권위가 세워져 다음 세대를 올바로 세우고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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