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더 기획특집 ]
21세기 유럽 철학과 정치경제학의 최근 동향 - 르네 지라르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본문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황혼과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퇴조
1960년대의 유럽 신좌파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막스 호르크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아도르노·마르쿠제에 의해 1930년대에 계승된 신좌익 사상이다. 네오마르크스주의 혹은 문화마르크스주의(Kulturmarxismus)를 표방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학문적으로 융합한 학파라 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아니라, 유엔과 EU와 같은 기관으로부터 탑다운 방식으로 관철되는 국가페미니즘(Staatsfeminismus)인 젠더 이데올로기의 주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도 문화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의 융합에서 탄생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철학에 기초한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최근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과 스티븐 힉스(Stephen Hicks)와 같은 학자들이 강조하듯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postmarxism)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해체주의 철학을 표방했던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에서 “해체주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급진화"(”deconstruction as a radicalization of a certain spirit of Marxism“)라고 주장했다. 데리다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이기에, 최근 스티븐 힉스와 조던 피터슨과 같은 학자들이 잘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듯이 포스트모더니즘과 네오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깊은 이데올로기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은 1989년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 1993년 마르크스주의의 미래에 대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리다는 1989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사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변호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철학자 미셀 푸코도 프랑스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중국의 마오쩌둥을 숭상하는 마오이즘에 심취하기도 한 학자다.
21세기 유럽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문화마르크스주의 퇴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20세기 후반 독일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독일 프랑크프루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이는 21세기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네오마르크스주의적 혹은 문화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들이 크게 약해지고 있는 것과 얽혀있다. 독일의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황혼과 죽음에 대해서 최근 말한바 있다. 문화마르크스주의 혹은 철학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던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에 대한 논의들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증가하고 있다. 영미권에서도 특히 2005년 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종언", "언어학적 전환의 종말,"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의 종말,"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의 죽음"에 대해서 논한 많은 학문적 연구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종언과 황혼을 보여주는 풍경은 데리다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반대철학(counter-philosophy) 운동의 선봉에 섰던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생애 후기에 종교적 전환을 해서 그를 추종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끄 데리다의 기도와 눈물: 종교 없는 종교』라는 책도 후기 데리다의 종교적 전환을 보여준다1). 데리다는 할례 받은 유대인이었지만, 무신론자로 살았다. 하지만 생애 후기에 그는 유대교 없는 유대인이 되었고, 종교 없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데리다는 할례(circumcision)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confession)을 연결해서 써컴페션(Circumfession)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고백과의 유사성을 주장한다. 그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고뇌한 모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이름과 다른 정황을 통해서도 성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비교와 연결을 시도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고백록을 어머니의 사후 저술했다면 데리다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 직전 저술했다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기도했고, 데리다의 어머니도 유대교 전통을 버린 아들이 돌아오길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물론 후기 데리다의 종교적이고 윤리적 전환에 대해서 그 동안 무신론적, 회의주의적 그리고 허무주의적 해체주의 철학을 주장했던 데리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그 종교적 전환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데리다가 여전히 무신론자로 남아있다고 그들은 본다. 데리다가 정통 유대교로 회귀한 것은 아니고, 그의 생애 후기의 종교적 전환에도 여전히 불충분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의 종교적 전환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21세기에 더 이상 지배적인 사조가 아니며, 이미 퇴조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유럽에서 인문학과 철학은 정치경제학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문명을 변화시켜 왔다. 20세기 후반 유럽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두 지배적인 학파와 사조(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황혼과 퇴조는 21세기 유럽에서의 네오마르크스주의, 문화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노선(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퇴조와 얽혀있다. 21세기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모두 중도 우파가 집권하고 있다. 프랑스의 젊은 마크롱 대통령도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체게바라 등을 영웅시했던 유럽 68 학생 문화혁명 세대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독일도 중도 우파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민주연합(CDU)이 집권여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혁명, 성정치, 퀴어 이론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는 사상누각이다.
21세기 유럽의 사회주의자들도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유럽 68 세대들이 시도했던 성혁명은 성공적으로 일어났으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68 세대들의 성혁명과 성정치 운동은 21세기 퀴어 이론,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동성애 담론 등으로 이어진다. 정치경제 영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회주의자들 자신들도 보지만,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사회주의 혁명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혁명 운동과 이것과 관련된 성정치 운동이다. 사회주의적(문화마르크스주의적인) 성혁명은 성공적으로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을 글로벌하게 행사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환경문제, 다문화정책과 함께 이러한 성혁명적이고 성해방적인 성정치 운동과 젠더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성혁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섹슈얼리티(성)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과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융합되어서 탄생한 개념이다. 『성혁명』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유럽 68 문화혁명 세대들의 성혁명과 성정치 운동의 기원이 된 오스트리아 출신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프로이트의 제자였지만, 이후 정신분석학회에서 추방되었는데, 그 이유는 라이히가 정신분석학회에 공산주의 사상을 도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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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ttps://derstandard.at/1382938/SPD-soll-demokratischen-Sozialismus-aufgeben
3) Jean-Pierre Dupuy, "Le Christ et le Chaos: Entretiens avec René Girard" (Le Nouvel Observateur no.1554, 18.8.1994, 60). 뒤피의 이 말은 다음의 책에도 번역되어 실렸다: René Girard, Wenn all das beginnt. Ein Gespräch mit Michel Treguer. Aus dem Französischen von Pascale Veldboer (Münster‐Hamburg‐London: Thaur, 1997), 189.
4) Michel Serres: "Discours de réception. Réponse de M. Michel Serres au discours de M. René Girard," 15.12.2005. 이 연설은 다음의 책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Michel Serres, "Receiving René Girard into the Académie française,” in René Girard and Sandor Goodhart. For René Girard: Essays in Friendship and in Truth (East Lansing: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0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