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럽 철학과 정치경제학의 최근 동향 - 르네 지라르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 가정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 젠더 기획특집 ]
21세기 유럽 철학과 정치경제학의 최근 동향 - 르네 지라르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페이지 정보

댓글  0    0 | 조회 1,198회

본문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황혼과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퇴조  

20세기 후반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과 정치경제학에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한 학자는 칼 마르크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유럽에서 지성계에서 기독교 학문의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르네 지라르는 20세기 후반 유럽 지성사를 지배했던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같은 반열의 학자로 평가받는 대학자다.

20세기 후반 독일 정치에 깊은 영향을 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Kritische Theorie)과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모두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라는 두 기둥위에 세워진 사조라 할 수 있다. 네오마르크스주의는 이탈리아의 그람시, 헝가리의 루카치 등이 1920년대에 주장한 마르크스주의의 분파 사상이다. 


1960년대의 유럽 신좌파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막스 호르크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아도르노·마르쿠제에 의해 1930년대에 계승된 신좌익 사상이다. 네오마르크스주의 혹은 문화마르크스주의(Kulturmarxismus)를 표방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학문적으로 융합한 학파라 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아니라, 유엔과 EU와 같은 기관으로부터 탑다운 방식으로 관철되는 국가페미니즘(Staatsfeminismus)인 젠더 이데올로기의 주요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도 문화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의 융합에서 탄생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철학에 기초한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1fb36b8767c85ee7f6fae500c438f91b_1609228838_2837.jpg
 

최근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과 스티븐 힉스(Stephen Hicks)와 같은 학자들이 강조하듯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postmarxism)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해체주의 철학을 표방했던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에서 “해체주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급진화"(”deconstruction as a radicalization of a certain spirit of Marxism“)라고 주장했다. 데리다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이기에, 최근 스티븐 힉스와 조던 피터슨과 같은 학자들이 잘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듯이 포스트모더니즘과 네오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깊은 이데올로기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은 1989년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 1993년 마르크스주의의 미래에 대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리다는 1989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사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변호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철학자 미셀 푸코도 프랑스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중국의 마오쩌둥을 숭상하는 마오이즘에 심취하기도 한 학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유럽의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유럽 68 문화혁명 세대 등은 모두 연동되어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네오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던 유럽 68 학생 문화혁명 세대들을 한국의 86 민주화 세대와 비교하면서 한국에서도 68 문화혁명이 필요하다는 일부 주장이 있다. 3 M(Marx, Mao, Marcuse: 마르크스, 마오, 마르쿠제)를 숭상하면서 3 K(Kinder, Küche, Kirche : 자녀, 부엌, 교회)를 거부했던 유럽 신좌파 68 세대들은 또한 프로이트의 제자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의 성혁명에 대한 책을 함께 읽으면서 성공동체도 시도했다. 이 공산주의적 성공동체에는 소아성애도 포함되었었다.



21세기 유럽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문화마르크스주의 퇴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20세기 후반 독일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독일 프랑크프루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이는 21세기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네오마르크스주의적 혹은 문화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들이 크게 약해지고 있는 것과 얽혀있다. 독일의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황혼과 죽음에 대해서 최근 말한바 있다. 문화마르크스주의 혹은 철학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던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에 대한 논의들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증가하고 있다. 영미권에서도 특히 2005년 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종언", "언어학적 전환의 종말,"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의 종말,"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의 죽음"에 대해서 논한 많은 학문적 연구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fb36b8767c85ee7f6fae500c438f91b_1609228899_9199.jpg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종언과 황혼을 보여주는 풍경은 데리다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반대철학(counter-philosophy) 운동의 선봉에 섰던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생애 후기에 종교적 전환을 해서 그를 추종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끄 데리다의 기도와 눈물: 종교 없는 종교』라는 책도 후기 데리다의 종교적 전환을 보여준다​1). 데리다는 할례 받은 유대인이었지만, 무신론자로 살았다. 하지만 생애 후기에 그는 유대교 없는 유대인이 되었고, 종교 없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데리다는 할례(circumcision)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confession)을 연결해서 써컴페션(Circumfession)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고백과의 유사성을 주장한다. 그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고뇌한 모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이름과 다른 정황을 통해서도 성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비교와 연결을 시도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고백록을 어머니의 사후 저술했다면 데리다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 직전 저술했다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기도했고, 데리다의 어머니도 유대교 전통을 버린 아들이 돌아오길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물론 후기 데리다의 종교적이고 윤리적 전환에 대해서 그 동안 무신론적, 회의주의적 그리고 허무주의적 해체주의 철학을 주장했던 데리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그 종교적 전환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데리다가 여전히 무신론자로 남아있다고 그들은 본다. 데리다가 정통 유대교로 회귀한 것은 아니고, 그의 생애 후기의 종교적 전환에도 여전히 불충분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의 종교적 전환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21세기에 더 이상 지배적인 사조가 아니며, 이미 퇴조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유럽에서 인문학과 철학은 정치경제학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문명을 변화시켜 왔다. 20세기 후반 유럽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두 지배적인 학파와 사조(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황혼과 퇴조는 21세기 유럽에서의 네오마르크스주의, 문화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노선(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퇴조와 얽혀있다. 21세기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모두 중도 우파가 집권하고 있다. 프랑스의 젊은 마크롱 대통령도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체게바라 등을 영웅시했던 유럽 68 학생 문화혁명 세대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독일도 중도 우파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민주연합(CDU)이 집권여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통해서 공론화된 것처럼 혹자들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가 국내에도 필요한 것처럼 낭만적으로 주장하지만, 독일은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이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 사회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민주당(SPD) 출신의 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의 입장을 계승하면서 사회민주당 사무총장인 숄즈(Scholz)는 “사회민주당은 ‘민주적 사회주의’(demokratischer Sozialismus)를 포기해야 한다”고 2003년 주장했다​2). 네오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던 유럽의 신좌파 그룹인 유럽 68 학생 문화혁명 세대들에는 3M (Marx, Mao, Marcuse), 곧 마르크스, 마오쩌둥, 마르쿠제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민주적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는 칼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최종 목표을 향한 중간단계라고 주장했다. 마르쿠제는 독일 사민당(SPD) 출신의 슈뢰더 전 독일총리의 멘토였다.



성혁명, 성정치, 퀴어 이론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는 사상누각이다.


1fb36b8767c85ee7f6fae500c438f91b_1609229139_5938.jpg

르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을 학제적으로 대화하고 응용하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프랑스 에꼴 폴리테크니크 (École Polytechnique)의 사회정치학자이자 스탠포드 대학의 장 삐에르 뒤피 (Jean‐Pierre Dupuy)는 다음과 같이 이 ‘지라르 현상’에 대한 말한 바 있다: "지라르는 하나의 현상이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그를 당대에 생존하는 위대한 학자들 중 하나로 평가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를 프로이드 혹은 마르크스에 비교하기도 한다. 또한 지라르는 일부 인문과학자들에게는 종종 스캔들로 받아들여진다. 지라르만큼 그 동안 스캔들처럼 폄하를 많이 받은 학자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폄하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지라르에게서 영감을 얻지만, 또한 그것을 숨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소르본느의 닭이 울기 전에 이러한 학자들은 이렇게 3번이나 다짐한다. ‘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 지라르의 이론은 바로 이 이론이 겪고 있는 폭력적인 폄하를 설명하고 또한 그것을 예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도발적이다."​3)


21세기 유럽의 사회주의자들도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유럽 68 세대들이 시도했던 성혁명은 성공적으로 일어났으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68 세대들의 성혁명과 성정치 운동은 21세기 퀴어 이론,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동성애 담론 등으로 이어진다. 정치경제 영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사회주의자들 자신들도 보지만,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사회주의 혁명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혁명 운동과 이것과 관련된 성정치 운동이다. 사회주의적(문화마르크스주의적인) 성혁명은 성공적으로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을 글로벌하게 행사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환경문제, 다문화정책과 함께 이러한 성혁명적이고 성해방적인 성정치 운동과 젠더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성혁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섹슈얼리티(성)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과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융합되어서 탄생한 개념이다. 『성혁명』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유럽 68 문화혁명 세대들의 성혁명과 성정치 운동의 기원이 된 오스트리아 출신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프로이트의 제자였지만, 이후 정신분석학회에서 추방되었는데, 그 이유는 라이히가 정신분석학회에 공산주의 사상을 도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1fb36b8767c85ee7f6fae500c438f91b_1609229154_3438.jpg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일종의 지적인 유행현상이었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인정한다. 포스트모던 철학이 지적으로 유행했기에 국내에도 데리다, 라캉에 대한 인지도에 비하면 르네 지라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미국에 처음으로 데리다와 라캉 등을 소개하고 데뷔시킨 학자가 지라르였는데, 이는 이후 소개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칼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지적인 유산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데 꼭 필요한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소개할 것인데, 우선적으로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작품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범성욕주의적 오독과 몰이해 위에 기초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파생된 유럽 68 문화혁명 세대들의 성혁명, 성해방, 성실험, 퀴어 이론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가 학문적 근거가 없는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을 르네 지라르의 그리스 비극이해에 기초해서 주장할 것이다. 퀴어 이론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가장 주요한 이론가인 포스트모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등장하는 근친상간(incest) 터부에 대한 폐지까지 주장하는데, 이는 그리스 비극작품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나온 사변들일 뿐이다. 르네 지라르는 프로이트와의 지적인 논쟁 속에서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과 부친살해라는 더러운 최악의 하마르티아(죄악, 비극적 결함)를 부지 중에 범한 사실을 이후 깨닫게 되어 자신이 성적으로 범한 어머니와 자신이 살해한 아버지를 눈으로 보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를 그리스 폴리스의 파르마코스(인간 희생양) 혹은 희생염소(scapegoat)로 새롭게 해석해 내었다.

소포클레스 그리스 비극 작품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범성욕주의적 오독과 몰이해로부터 20세기 후반의 각종 광기어린 성혁명, 성해방, 성실험, 성정치 운동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성혁명 운동은 심지어 소아성애, 근친상간, 통음난무, 폴리아모리(다자성애) 등을 점차 탈범죄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르네 지라르에 대한 다음의 학문적 소개 이후에 좀 더 깊게 소개될 것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불멸’의 40인  
2015년 겨울에 타계한 르네 지라르는 2005년 학자로서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는 ‘불멸’의 40인이라 불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프랑스 학술원)의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불멸’의 40인에 속하는 또 다른 학자인 미셀 세르(Michel Serres)는 2005년 지라르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지라르의 수락연설에 대한 답변에서 지라르를 “인간과학의 새로운 다윈”(nouveau Darwin des sciences humaines)으로 평가했다​4). 지라르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그가 결코 만족하지 않고 열정적인 지성이었다는 점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AFP는 전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지라르를 국민적인 학자로 자랑해 왔었다. 그가 가르쳤던 미국 스탠퍼드대는 그를 추모하면서 "그의 관심은 유행에 좌우되지 않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들에 기울어졌다"고 밝혔다.


37dd715342bf22a97330859f7abca3eb_1607412742_4048.jpg

정일권 박사
르네 지라르 이론에 대한 학제적 연구 중심지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 조직신학부 기독교 사회론(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분야에서 신학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인스부르크 대학교 인문학부의 박사 후기 연구자(postdoctoral research fellow) 과정에서 학제적 연구프로젝트 『세계질서-폭력-종교』 (Weltordnung-Gewalt-Religion), 『정치-종교-예술:갈등과 커뮤니케이션』에서 연구하고 귀국했다. 지라르를 직접 2번 만나 학문적 대화를 나누었다. 한동대학교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초빙교수로 가르쳤다. 국제 지라르 학회인 ‘폭력과 종교에 관한 콜로키움’(Colloquium on Violence and Religion)의 정회원으로서 르네 지라르와 불교 연구에 있어서 국제적 인지도를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800여개의 외국논문이 정일권 박사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board_writer_under.jpg



1) John D. Caputo, The Prayers and Tears of Jacques Derrida: Religion without Religio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7).
2) https://derstandard.at/1382938/SPD-soll-demokratischen-Sozialismus-aufgeben
3) Jean-Pierre Dupuy, "Le Christ et le Chaos: Entretiens avec René Girard" (Le Nouvel Observateur no.1554, 18.8.1994, 60). 뒤피의 이 말은 다음의 책에도 번역되어 실렸다: René Girard, Wenn all das beginnt. Ein Gespräch mit Michel Treguer. Aus dem Französischen von Pascale Veldboer (Münster‐Hamburg‐London: Thaur, 1997), 189.
4) Michel Serres: "Discours de réception. Réponse de M. Michel Serres au discours de M. René Girard," 15.12.2005. 이 연설은 다음의 책에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Michel Serres, "Receiving René Girard into the Académie française,” in René Girard and Sandor Goodhart. For René Girard: Essays in Friendship and in Truth (East Lansing: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09), 5.

  • 페이스북으로 공유
    페이스북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카카오톡

좋아요 0 목록 공유하기

0건의 댓글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Top 5
      •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