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미국 성인들은 낙태는 모든 또는 대부분의 경우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출처: 퓨 리서치 센터).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와는 대조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부터 지속적으로 낙태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9년 2월 국가 조찬기도회에서는 예레미야 1장 5절의 말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을 인용하며 “태어났든지 아직 엄마 뱃속에 있든지 모든 아이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생명의 존엄성과 신성함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겠다.”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처음부터 낙태를 반대했던 것은 아닌데, 1999년 국영 TV 인터뷰에서 “나는 확실한 프로초이스(pro-choice)1다. 낙태라는 개념이 싫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보수주의 기독교 그룹의 ‘복음주의 생명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미국의 50개 주 중 11개
주에서 낙태금지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했는데 이 지역들은 남침례교가 주류 교단이며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다. 낙태금지법안이 통과된 주의 지역적 특성에서 알 수 있듯 ‘낙태법 개정’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복음주의 기독교(특히 남침례교), 공화당, 프로라이프(pro-life)2의 3 체계가 유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침례교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개신교단으로, 전체 복음주의 기독교 그룹과 비교하여도 문화,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며, 인종 다양성이 낮아 백인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백인 비율85%, 2014년 통계).
낙태에 관한 입장을 낙태권 반대(일부 허용), 낙태권
지지(일부 제재), 낙태권 지지(제한 없음) 및 불분명이라는 4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면, 남침례교는 낙태권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으며,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는 다소 허용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남침례교 공공정책기관인
윤리 및 종교 자유 위원회(The Ethics & Religious Liberty Commission, 구
기독교 생명 위원회)는 천국(kingdom), 문화(culture), 사역(mission)이라는 비전 하에 43,000개 이상 독립 교회와 1,6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하에 선거관리기관(Voter Registration), 연구기관(Research Institute), 위기임신센터 지원 기관(Psalm 139
Project)을 두어 실제 입법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2004년 북한 인권
강령 통과도 이들의 성과이다. 남침례교단은 1971년부터
시기별 낙태에 대한 정치, 사회적 사안에 대한 입장과 행동 방침인 ‘남침례교
결의안’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미국의 시기별 정치 사안, 주요 입법 사항 및 남침례교의 활동들과
현재 추진되고 있는 낙태금지법 (태아심박동법)의 전반을 살펴보고
복음주의 생명 운동의 활동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Ⅰ. 시기별 정치 사안, 입법 사항과 남침례교 결의안
1) 닉슨 행정부 (1969-1974년)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당시의 의학 기술에 비추어 태아의 독자 생존이 어려운
임신 28주 이내의 낙태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며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여성에게 있음을 판시하였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태아는 ‘잠재적 생명’이지만 헌법적 권리와 인간 존엄성은 인정되지 않는 상태로 간주한 것으로 낙태권 판결의 분수령이 되었고, 2019년 4월 11일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영향을 주었다.
공화당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있기 전에는 낙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부의 제한된 역할과 개인 자유의 이데올로기로써 낙태 권리를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정치적 아젠다를 가족주의 이슈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카톨릭 및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닉슨 행정부가 낙태 문제를 공화당의 공식 정책으로
처음 확립했다
1960년 후반-70년대 초반까지
미국 카톨릭 주교회가 낙태 반대의 유일한 협의체였으며 개신교단은 낙태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71년, 1974년 남침례교 협의회는 산모의 임신 중절권(abortion on demand: 강간, 근친상간, 심각한 태아 기형, 산모의 정서적/정신적/신체 손상의 경우 낙태 허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남침례교 협의회는 1976년이 되서야 처음으로 낙태권 반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였는데, 낙태 문제는 인간 생명 존엄성에 대한 성서적,
도덕적, 영적 문제임을 인정하며 산아제한으로써의 낙태를 반대하고, 산모를 위한 개인 상담 및 의료 서비스 지원을 결의하였다.
당시 남침례교단의 낙태에 대한 급격한 입장 변화는 보수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갈등에 기인한다. 1970년에 시행한 남침례교 주일학교 이사회 설문조사에서 70%의
목회자들은 산모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 보호를 위해 낙태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침례신문 워싱턴 지부 국장인 W.Barry Garrett은 사설을
통해 “로 대 웨이드 판결에 의해 종교의 자유, 인간의 평등, 정의가 진보되었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또한 남침례교 신학교 폴 시몬스(Paul Simmons) 교수는
“하나님은 낙태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등 당시 남침례교단
내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성경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는 급진적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 회귀 운동(Conservative Resurgence)’을 통해 교단 내 신학적 태도를 재정립하고자 했고, 1979년 애드리언 로저스 목사 (Adrian Rogers)가 총회장으로
선출되며 보수주의적 입장을 곤고히 한다. 교단 내 신학적 분위기가 쇄신되며 낙태에 대한 신학적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예레미야 1장과 시편 139장을 낙태 반대를 확증하는 성경 구절로 주지하였으며, 신약에서 8번 사용된 아기(Brephos)라는 단어는 6번은 이미 태어난 아기를 일컫는 말이었고 2번은 태중의 세례 요한을
일컫는 말임을 근거로 태아를 성인과 동일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성경의 입장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낙태에 찬성했던 목회자들이 회심하는 은혜가 있었다. 또한 임신 초기에도 태아의 심장박동 및 뇌
활동이 존재하며, 수정 순간 수정란에 고유한 DNA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신학적 근거와 더불어 객관적인 의학적 근거 또한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급격히 증가한 낙태율(1969년: 5만
건, 1970년 20만 건,
1975년 1백만 건, 1980~85년 연평균 1백60만 건)은 무분별한
낙태를 저지하기 위한 크리스천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당시 낙태 반대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전환하는데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은 복음주의 선교사, 장로교 목사, 기독교 변증가인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이다. 그는 “낙태 자유화는
악의적 세속 국가의 결과물(product of malevolent secular state)”이라 평하며
낙태는 국가의 부도덕, 무질서의 결과이며 본질적으로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다. 따라서 낙태 반대는 기독교의 고유 가치인
가족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며, 도덕적 무질서와 세속적 사법부에 대한 고유한 투쟁이자 크리스천 중심의
법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 설파했다. 또한 낙태 문제는 영아살해 및 안락사와 연결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임을 지적했다. 이러한 쉐퍼의 논지는 카톨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당시 카톨릭은 뉴딜주의에 입각하여 인권, 복지 및 사회적 정의의
명분으로 낙태를 반대하였다. 하지만 태아를 약자이자 소수자이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이러한 입장은 뒤이어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의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 평등권과 상충되며 점차적으로 입지를 잃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1970년대 말-1980년대 낙태 반대 운동의 주류 그룹을 재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67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낙태 완화법에 서명을 한 전력이 있으나 1980년 대선 운동부터는
낙태권 제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레이건 대통령이 표방한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신보수주의(복음주의 기독교 우파) 그룹과 본격적인 협업을
시작하였다. 공화당의 낙태 반대 스텐스는 당 내 기독교 보수주의의 연합을 위한 집결지가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프로초이스 공화당원들이 출당하며 당의 공적 이미지와 정체성에 변화가 온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 세계금지명령을 통해 해외 낙태 시술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폐지했다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다시 도입된다).
남침례교 협의회는 1982년 ‘낙태
및 영아살해 결의안’을 통해 수정 순간 인간 생명이 시작되며, 태아의
삶의 가치는 성인의 삶의 가치와 동일하기에 낙태를 수용하는 것은 유아살해, 아동학대, 안락사 증가와 같은 인간 존엄성 상실로 이어질 것을 경고했다. 1984년과 1987년 ‘낙태 결의안’에서는
적극적인 프로라이프 활동을 시작하며 산하기관 및 교회에 산모
서비스 (태아에 대한 정보 제공, 낙태 외 대안 제시, 주택, 입양) 지원을
요청하였고, 적극적인 낙태 반대 운동(부모 고지 없는 미성년자
낙태와 무분별한 피임약/세금 사용 반대, 의료인 감시)과 함께 기독교 생명 위원회(Christian Life Commission)를
통해 낙태에 대한 의제 우선권, 입법 로비 활동에 참여 할 것을 결의한다. 1988년과 1989년에는 ‘프로라이프
활동, 낙태 규제법 결의안’을 통해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주의회에 낙태반대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시에 가정선교위원회, 기독교생명위원회, 주일학교 관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교단 내 활동을 더욱 확장하기로 한다.
이 시기 크리스천들은 종교적 권리와 자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정치적 권리로 확대하고자 하였고, 기독교 보수주의 운동은 정치적 보수주의자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적극성을 띄어 간다. 즉, 크리스천은 과거의 박해 받는 소수자에서 벗어나 도덕적 다수
그룹이 되기 위한 도약을 시도한다. 이에 따라 낙태 반대에 대한 근거 역시 능동적으로 변화되는데, 과거에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여 설득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면 낙태를 방치하는 것은 생명권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 위반이자 가족 가치에 대한 공격이라는 견고한 반론적 틀을 확립한다. 이러한 의식 및
태도의 전환은 젊은 세대가 낙태 반대에 대한 일관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천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킨 핵심 인물은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계의 대표적 목회자이자 복음전도사인 제리 파웰
(Jerry Falwell, 1933-2007)이다. 파웰이 설립한 ‘도덕적 다수 (Moral Majority)’는 가족을 중시하며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하고, 기독교인의 투표를 독려, 보수주의 후보자를
지지, 후원함으로써 기독교적 가치를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도덕적 다수는 기독교 학교 면세를 철회하고 이스라엘-이집트 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중재를 이끈 지미 카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레이건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전체
기독교인의 2/3 투표율 달성).
3) 조지 H. W. 부시 행정부 (1989-1993년)
이 시기 공화당 중앙위원회의 2/3가 기독교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되며 공화당의
정체성은 더욱 공고해진다.
1992년 가족계획협회(Planned
Parenthood)는 낙태권을 제한하는 주법을 통과시킨 로버트 케이시 펜실베니아주 주지사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한다. 케이시 주지사는 민주당 출신이었지만 강경한 낙태반대론자였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조항은 배우자 동의,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동의, 고지
하 동의 요건(informed consent), 낙태 상담 후 24시간
대기 항목이었는데, 연방대법원은 배우자 동의 항목을 위헌으로 폐지하였으며 그 외 항목에 대해서는 유지
판결을 내린다.
남침례교 협의회는 1991년 ‘인간
생명 존엄성에 대한 결의’를 통해 낙태 지원 연방기금, 경구
낙태 약물 및 낙태된 태아 조직을 이용한 연구 지원 금지를 요구하였고, 1992년
‘태아 조직 실험에 대한 결의’를 통해 유도 낙태된 태아
조직의 비윤리적 사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4) 빌 클린턴 행정부 (1993-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선택의 자유에 근거하여 낙태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프로초이스의 활동을 옹호하는 입장 및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에 대해 남침례교 협의회는 1993년 ‘낙태
선택권에 대한 결의안’을 통해 빌 클린턴 행정부의 낙태 선택권 옹호,
건강보험개혁안의 낙태 포함, FDA의 특정 낙태 약물의 허가 및 제작 요청, 낙태클리닉 주변에서 프로라이프 활동가들의 반대 활동을 금하는 ‘표현의
자유 제한’ 입법 추진을 반대하였고, 1994년 ‘RU 486(프랑스 낙태 약물)에 대한 결의’를 통해 약물의 판매를 허용한 정부를 비판하며 해당 제약회사에 대한 보이콧을 진행하였다. 1996년에는 ‘부분 분만 낙태 금지 결의안’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부분 분만 낙태 허용 법안의 사인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부분 분만 낙태란(partial birth
abortion) 임신 20주 이후 시행되는 낙태의 방법으로 초음파 가이드 하에 낙태 시술자가
포셉으로 아기의 다리를 잡고 산도 밖으로 꺼낸 뒤 머리를 제외한 아기의 몸 전체를 분만시키고 흡입 튜브로 아기의 뇌를 흡인하여 두개골을 와해시킨
후 죽은 아기를 산도를 통해 배출시키는 방법이다. 1999년에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 태아 조직 밀거래에 대한 결의’를 통해 2000년 총선 후보자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5) 조지 W. 부시 행정부 (2001-2009년)
남침례교 협의회는 2002년 ‘부분
분만 낙태 결의’를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낙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할 것과 부분 출산 낙태 금지법의 통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3년 부분 분만 낙태 금지법이 통과되었으며, 2007년 위헌
소송에서도 합헌 판정을 받는다. 또한 ‘로 대 웨이드 30주년 결의’를 통해 과거 낙태에 일부 찬성했던 성경에 위배되는
행동에 대한 반성과 로 대 웨이드 위헌 판결을 위해 지속적인 행동을 할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줄기세포연구, 인간-동물 하이브리드 생성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2008년에는 ‘가족계획 연맹에 대한 입장
결의’를 통해 가족계획 연맹의 비도덕적 행태 및 정부의 과도한 지원($300만/년)을 반대하고 이에 대한 대통령의 요청 예산 거부안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한다.
6) 버락 오바마 행정부 (2009-2017년)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정치, 사회의 전반에서 반기독교적인 제도 및 제약이
강화되었지만, 이 시기는 또한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공화당 내 활동가 중 가장 많은 수의 종교 단체로
부상한 시기이기도 하다.
남침례교 협의회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입장 결의’를 통해 인간 배아 연구 기금 증대, 프로초이스
지원 확대, 프로라이프 활동가 처벌 강화, 공공/사립기관의 유대-기독교적 상징 물 사용 제한, LGBT Pride Month 제정 등 오바마 대통령의 반기독교적이며 프로초이스를 지향하는 입장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또한 ‘입양 및 고아에 대한 결의’를 통해 남침례교 가정에서 입양을 장려하고 전 전인 영역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사역을 확장할 것을 촉구하였다.
7)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017년~)
낙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성폭행,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은 낙태를 제한하는 여러 법률 및 제도를 통과시켰다. 2017년에는 낙태를 제공하는
국외 단체에 대한 세금 지원(가족계획연맹 국제 자산 1억
달러)을 금지하는 멕시코시티정책에 서명하였고, 유엔인구기금 지원을 중단하였다. 유엔 인구기금지원은 155개국의 모자보건, 가족계획 사업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2015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영국, 노르웨이에 이어 3번째로 많은 7천 500만
달러(843억 원)의 기여금을 냈다. 당시 토마스 섀넌 국무부 정무차관은 "유엔인구기금으로 간
지원금이 중국의 강제 낙태나 비자발적 피임 프로그램의 운영에 쓰이고 있다"고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2018년에는 보건사회복지부 산하 양심과 종교자유국을 신설하고 25개의
양심·권리 보호조치를 통해 낙태 및 의사 조력 자살 거부권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였다. 2019년에는 타이틀 엑스의 지원을 받는 클리닉에서의 낙태 알선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타이틀 엑스는 정부의 가족 계획 프로그램으로, 유방암, 자궁경부암, 성병 검사 및 치료 등에 매년 2억8600만 달러를 지원하는데 전체 클리닉의 40%는 저소득층 여성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지원하는 가족계획연맹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낙태 알선 금지 정책은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에 저촉되며 "임의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arbitrary and capricious)”는 이유로 연방법원에서 예비금지 명령이 발효된 상태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논란 끝에 태아 조직을 이용하는 연구를 제한하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사법 체계는 주법과 연방법의 이원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개별
주는 고유한 주법을 제정할 수 있지만 이는 연방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이에 2019년 기준 50개 주 중 11개
주에서 심박동법을 비롯한 낙태금지법안이 통과 되었지만 로 대 웨이드 판례에 위배된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루이지애나, 오하이오, 미시시피, 아이오와, 알컨서스, 켄터키의 법안들이 금지 처분을 받거나 예비금지령을 받은
상태이다.
낙태 허용 가능 시기 및 허용 사유는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낙태금지(제한)법들은 태아의 독자 생존 기간을 28주로 임의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현대 의학적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법안은
1) 낙태의 전면 불법화, 2) 태아 심박동 감지(재태(在胎)연령 6주) 이후 낙태 금지, 3) 재태연령 18주 경과 후 낙태 금지, 4) 경관 확장 자궁 소파술 금지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허용 사유는 의학적 응급상황, 강간/근친상간, 태아의
기형(염색체 이상 등), 정신과적/심리적 문제가 있다. 본 글에서 모든 주의 개별 법안을 살펴보기에는
제한이 있으므로 심박동법의 핵심 내용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심박동법의 골자는 태아 심박동이 감지된 경우 그리고 여성의 자발적인 사전 동의가 없는 경우
의학적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설사 여성이 낙태 시행에 동의하더라도
낙태 시행 전 다음과 같은 여러 절차를 거치도록 강제하고 있다. 낙태 클리닉 또는 의료진은 낙태가 여성에게
미칠 정신적/신체적 영향을 고지하고, 태아가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과 진료를 제공해야 하며 (태아 심초음파 검사 의무화
및 산모에게 확인, 태아의 만기 생존율 고지, 정부 기관에서
제작한 프로라이프 자료 배부), 주 정부에서 시행 중인 낙태의 대안 정책을 소개해야 한다. 주정부의 대안 정책은 부양 자녀 돌봄, 임신 지원 센터, 위기 임신 센터, 입양 센터, 모성
건강 관리, 신생아/유아 돌봄, 정신건강 관리, 상담 서비스, 주택
프로그램, 유틸리티 지원, 운송 서비스, 임신 관련 음식/의복/용품
제공, 육아 기술, 교육 프로그램, 직업 훈련 및 배치 서비스, 약물 및 알코올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법안에는 주정부와 의사의 의무도 명시되어 있다. 주정부는 프로라이프 자료를 제작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시술을 관리, 감독하여 매 해 낙태에 대한 통계 자료를 배포해야 한다. 의사는 낙태 시술 시 법률에 정해진 서식에 따라 주정부에 해당 시술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강압에 의한
낙태 여부를 감시할 의무도 있다. 법률 위반 시 의사는 민사 또는 형사적 책임과 윤리 규정
위반에 대한 징계를 받을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여성에 대한 처벌은 없다). 또한 일부 주는 남성의 양육비 지원 의무를 공지하여 남성의 양육 책임을 법제화하고 있으며, EU 21개국, 스위스, 노르웨이처럼
낙태에 대한 의료인의 양심적 거부권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주법들이 태아 기형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현재 출생 전 진단되는 대부분의 태아 기형은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주지
않고 치료될 수 있다는 점에서 태아 사유로 인한 낙태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
미국의 낙태금지(제한)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기독교적 생명 존중 가치를 근본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정 순간으로 보는 의학적 근거를 법안에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오하이오주 법안 서문에는 ‘1)
태아의 심장 박동은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 출생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의학적 지표이다,
2) 오하이오주는 여성의 건강 보호를 적법한 권리로 인정하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근본적 권리로 인정한다, 3) 인간은 수정 시 전인적이고, 유전적으로
고유한 개체가 되며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만이 필요하다, 4)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 된 후 95-98%의 태아가 만기까지 성장한다, 5) 배아기의
인간 개체 및 성인기의 인간 개체는 자연적으로 동일하며 생물학적 차이는 오직 성숙의 차이에 기인한다.’ 라는
내용을 삽입하여 해당 법이 어떤 가치를 바탕으로 제정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미주리주 프로라이프
자료에는 “인간의 생명은 잉태한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낙태는
개별적이고, 귀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라는 문구를 필수적으로 삽입하도록 하고 있다.
생명이 시작되는 시기를 언제로 볼지가 중요한 이유는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 인간 존엄성에 대한 헌법적 권리가 발효되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며 이에 따라 낙태 가능 시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명 시작
시기에 대한 관점은 낙태에 대한 찬반 의견뿐 아니라 낙태의 허용 범주와 법적 제한의 강도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2019년 시카고대학 박사학위논문에 의하면 프로라이프 그룹의 59%가
수정 시 생물학적 인간이 된다고 답한 반면, 프로초이스 그룹의 응답률은 23%에 그쳤다. 하지만 같은 연구에서 86개국 출신, 1,058 기관,
5,557명의 생물학자들에 동일한 질의를 한 결과, 70%의 생물학자들이 수정 순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응답하였으며 스스로를 프로초이스라고 답한 생물학자들의 60% 역시 수정 순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러한 연구 결과는 추후 복음주의 생명운동에 유의한 근거가 될 것이다.
Ⅲ. 미국에서 낙태법이 가지는 의미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문화 전쟁(culture war)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전투지이다. 미국의 건국 이념인 유대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가 쇠퇴함에 따라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다원주의 현실에 적응하여
살 것인지, 아니면 종교 자유의 권리를 지킬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기로에 놓이게 된다. 과거의 사회적 갈등이 전통 도덕과 개인 자유의 충돌로 빚어졌다면 현재의 갈등은 자유 유형의 상충, 즉 권리의 충돌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즉, 많은 갈등들이 크리스천의 종교의 자유와 이를 적대시하는 또 다른 권리(동성결혼
합법화,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법 등)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보다 복잡하고 심화된 새로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미국 크리스천들의 대응 방식은 대한민국의 크리스천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과거에 소수의 엘리트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주체로서 개인 및 교회를 계몽하여 ‘종교적 도덕성을 수호’하고자 했다면,
현재는 일반 시민인 평신도들이 주체가 되어 대중 정치적 접근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적 권리를 인식한 개개인이 지배적인 도덕적, 문화적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정치적 의결을 행사하는 데까지 지경을 확장하였다.
복음주의 생명운동 역시 ‘생명권 수호’라는 종교적
권리와 태아는 독립적이며 고유한 생명체라는 명확한 의학적 사실을 통해 낙태에 대한 논점을 재정비하여 험난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Ⅳ. 기독교 보수주의 그룹의 역할과 과제
초기 기독교 보수 우파는 민주당 및 뉴딜정책 반대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협력자로서 공화당과의 ‘연합론’을 추구했다. 당과
공식적 연결이 부재한 작은 독립 기관이었으며, 이들의 정치 그룹 진입을 견제하는 세력들도 있어 정치
세력화 보다는 소규모의 자체적 활동에 집중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며 당내 보수 크리스천들이 확고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며 유대-기독교, 반공 그리고 가정을 중시하는
당의 정체성이 명확해진다. 편지, 전화, 집회와 같은 풀뿌리 활동을 통해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의 투표율을 증가시켰고, 당의
프로라이프 입장을 견고히 함으로써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밥 돌(Bob Dole)을 제외한 모든 대선 후보가 낙태를 반대했다.
이들은 당 내 기독교 입법 기관과 입법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입법 정치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공화당 내 기독교 보수 우파의 정치, 입법 부분에서의 전문화는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주요한 동력이었으나 정치적, 문화적 입장의 중도화라는 현실적인 변화도 내포하고
있다. 즉, 선거라는 광의적인 목표에 흡수됨에 따라 이상적인
후보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기독교 보수주의자에서 다원주의적 가치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공리주의적 개인주의자(또는 자유주의자)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복음주의 생명운동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로 대 웨이드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위헌 판결이 낙태를 불법화 하는 것은 아니며 개별 주의 낙태법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권고와 동의에 따라 임명되지만 연방대법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기관이며 국민들의 정서에 반한 독자적 의견을 제시하는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로 대 웨이드의
위헌 판결을 위해서는 결국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선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추후의
활동은 정치적 그룹(유권자 조직, 입법/입안), 직접 활동 그룹(낙태
공급 감소, 프로라이프 단체 간 커넥션 증대), 공공 교육
그룹(낙태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전환, 목회자와 평신도 교육), 그리고 개인 활동 그룹(임산부와 직접적 교류, 실질적 사회, 경제적 문제 해소를 통한 낙태 수요 감소)으로 구체화 및 세분화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은 진리임을 인정하고(공리주의적 사용에 반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며(현실 정치 참여 등), 인간성
상실에 도전하여(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 수호), 궁극적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장지영 교수
이화여대 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연세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임상진료조교수 및 진료교수를 거쳐 이화여대 서울병원 검진센터 소화기내과 임상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기독교 보수주의 청년단체 트루스포럼의 이화여대 대표 및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연구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 프로초이스 (pro-choice)
임신중절에 합법화에 찬성하는 일(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
2. 프로라이프 (pro-life) 임신중절의 합법화에 반대하는 일(생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주장)